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한 편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드라마의 오글거리는 대사들이 인터넷 뉴스에 실려서 화젯거리가 되고, 시청자들은 드라마 출연 배우들을 향한 ‘가슴앓이’까지 했다고 하니, 잘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드라마의 무엇이 그렇게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을까?’ 자못 궁금해졌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지 간에, 많은 사람들이 그 판타지(fantasy)를 보면서 울고 울었으니, 일단은 작가님과 감독님, 그리고 출연진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는 이야기에는 분명 인류에게 지워지지 않을 그 나름의 메시지가 담겨 있게 마련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회자되는 신화(神話)나 고전(古典ㆍclassic)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지요. 그야말로 리얼리티(reality)가 빈곤한 판타지 같은 설화를,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공감하며, 다시 꺼내어 읽는 이유이겠습니다. 현재 우리네 드라마는 그렇게 심오한 인류의 지혜를 담았다고 하기엔, 작가님과 감독님이 들으시기에 조금은 계면쩍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네 현실에 불고 있는 드라마가 만들어 낸 ‘신드롬’은 어찌된 영문입니까? 인간은 분명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욕망하며 애착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가 욕망하는 그것에 대한 성찰이 비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내가 왜 그것을 욕망하는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참으로 나와 우리에게 선(善)한 것인지? 아니면 남들이 원하니, 나도 그저 같은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굳이 따져 스스로에게 자문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욕망하는 현실적인 것들이 그대로 ‘참된 가치’가 되고, ‘확고한 진리’가 되어 굳어져 버리는 세상입니다. 오히려 진정한 가치는 판타지가 되었지요. 이렇게 전도(顚倒)된 사회 속에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것들을 삶의 저편으로 밀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 각박함 속에서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 낸 판타지는, 삶의 뒤편으로 밀어내버렸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우리네 의식으로 다시금 끄집어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드라마를 통한 가슴앓이는 우리에게 결여된 것을 향한 막연한 욕망이 불러낸 ‘갈증의 신드롬’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네 현실이 너무도 공허하고 빈(貧)해서, 우리에게 없는 그 무엇을 온통 쓸어 담아 놓은 드라마 속 이야기와 주인공들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게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드라마가 호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우리 사회의 ‘공감능력’이기보다 우리네 현실이 담고 있는 시린 ‘결핍’이 자극한 욕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점점 사랑도, 우정도, 심지어 가정마저도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여 사유하는 경향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우리의 세속 사회 속에서, 가진 것 없이도 당당해서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고 소유한 재화와 사회적 지위가 아닌, 오직 가슴 따뜻한 인간애가 내뿜는 인간성을 향한 지순한 사랑을, 우리는 공감의 시선이 아닌 동경의 눈빛으로 선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은 책임감과 충성심에 반해서 울었지만, 이는 우리의 빈곤한 내면에 울리는 결핍 가득한 욕망이 울어대는 음향이었을 것입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가 본 것은 무엇입니까? 엔터테인먼트인 드라마가 재미있으면 그뿐이라면, ‘순간적 감상’(感傷)일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가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세상과 이웃을 믿고, 진정한 사랑을 꿈꾸며, 번듯해진 세상을 희망하여 꿈꾸기에는, 현실의 벽에 갇힌 우리들이 너무 옹졸하고 비겁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편의 ‘드라마 신드롬’이 우리에게 가슴시리도록 잔상을 남기는 애틋한 현상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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