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 다가오니 작년 이맘때 미사 중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날 미사 중에는 본당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드리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지요. 제대 앞 바구니에 가득 쌓인 카네이션을 보며 ‘아, 나는 이제 카네이션을 꽂아드릴 분도 안 계시는구나’라며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었습니다. 눈물이 쏟아졌던 것은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채 지팡이를 짚고 계신 한 할머니를 본 이후였습니다. 할머니는 성당에 들어설 때부터 가슴 한 쪽에 카네이션을 꽂고 계셨습니다. 아마 집에서 자녀들에게 받은 것이겠지요. 할머니는 미사 내내 한없이 표정이 밝으셨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나는 자식들에게 직접 받은 카네이션이 있다’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돌아가시기 2~3년 전쯤부터 치매 증상이 심해지신 아버지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곤 하셨습니다. 24시간 누군가가 곁에서 돌봐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입원을 결정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는 점점 어려워졌고 이상한 말씀을 하실 때도 늘어났습니다. 입원 후 가끔 아버지를 찾아뵀었는데 그날은 딸아이가 함께 갔었지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딸아이가 부족한 용돈을 쪼개어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을 사왔는데, 기특하게도 할아버지를 생각해 카네이션을 하나 더 사왔더라고요. 딸아이가 병원 환자복에 카네이션을 꽂아드리자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시며 딸아이 손을 꼬옥 잡으시더군요. 글쎄요…, 그렇게 환하게 웃는 아버지 표정을 본 것이 언제일까요. 희미해지는 기억들 속에서 길을 잃은 아버지는 그 순간에는 마치 편찮으시기 전으로 돌아간 듯 보였습니다.
떠올려봤습니다. 제 손으로 카네이션을 드린 것이 언제인지…. 죄송하게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더군요. 무슨 날이 되면 그저 하얀 봉투에 얼마씩 챙겨 넣어 필요한 데 쓰시라 내밀었고, 그러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었습니다. 꽃이야 시간이 지나면 시들테고, 시들면 결국 쓰레기로 버려질 것인데 뭐하러 돈을 쓰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미사 중에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렇게 기뻐하시고 저렇게 좋아하실 일인데 그깟 돈 몇 푼이 뭐가 아까웠을까요…. 아버지도 카네이션을 부러워하셨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다시는 그 가슴에 꽃을 드릴 수 없음이 더 마음이 아프더군요. 올해 어버이날에는 부모님 묘소에라도 꽃 한송이 드려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정유미(안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