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통일을 논할 때 분단에 의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논의를 빠뜨려선 안 될 것이다. 통일된 한국사회 내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이를 문제 제기할 것이며, 특히 과거 북한 당국에 의해 인권피해를 입은 북한 출신 주민들이 가장 강력하게 ‘과거청산’을 요구할 것이다.
피해 사실에 대한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상 및 배상, 용서와 화해 등 일련의 ‘과거청산’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과거청산’을 경험한 여러 국가의 선례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논의의 시간과 노력을 줄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과거청산’은 각 나라마다 체제의 붕괴 내지 전환과정과 시대적 배경, 새로운 체제의 법질서와 가치관, 국민들의 의사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됐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시사점을 줄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독일의 사례다.
우선 독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국가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분단국의 통일과정에서는 청산의 대상이 속해 있었던 구성체뿐 아니라 다른 분단국 구성체 구성원들의 의사도 반영이 돼야 한다.
통일독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형태로 이뤄졌지만, 과거청산은 오히려 동독 주민의 의사에 따라 진행이 되다가 그 주된 역할을 통일 독일 정부가 담당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통일독일의 과거청산은 법과 제도 질서의 통합과 더불어 동서독의 내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동독에서 민주화 혁명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제공한 가해자들을 방치해 두지 않고, 불법체제에 대한 청산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내적 갈등을 줄이고 통일된 하나의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나아가 더 이상 불법이 자행되지 않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거청산’ 작업이 서독의 헌법적 질서 하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남북한의 통일이 현재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면 우리의 법체계에 부합되도록 ‘과거청산’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청산 방식은 이런 측면에서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모델이다. 이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진정한 한반도 식 ‘과거청산’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과거청산 작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준비 중 하나는 바로 과거의 일들을 잘 기록해 두는 것이다. 오랜 역사적 사실들을 지금부터 잘 기록해 두고, 그것을 보존해 훗날 과거청산의 시점이 왔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한반도식의 사회통합 모델 구축에 대한 노력이 지금부터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