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카타리나는 떨릴 만도 한데 실수 없이 참 차분하게 미사 반주를 잘해” 이 말을 듣기까지 사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오르간 반주를 하다 보면 신자들은 모르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경험하게 된다. 찰나의 순간 제대 위 신부님과 재빨리 눈으로 이야기하며 사고를 없었던 일인 것처럼 수습하기도 했고 신부님과 벙긋벙긋 입 모양으로 의사를 전달하다가 손발이 맞지 않아, 그날 미사 후에 지나가는 신자들마다 “카타리나, 아까 그거 무슨 일이었어?”라고 묻는 질문공세를 피해 성당 뒷문으로 후다닥 도망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성가 번호가 134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순간 헷갈려 바로 옆 성가를 반주한 사소한 실수도 있었고, 미사 시간에 늦어, 주례사제가 제대에 오른 뒤에야 입당성가를 쳤던 사고도 있었다.
강론하러 독서대 앞에 서신 신부님의 손이 독서대 아래 선반에서 갈 곳을 잃고 휘적휘적한 뒤 ‘카타리나 도와줘!!!’ 눈빛으로 보냈을 땐, ‘아, 강론 원고를 두고 오셨구나!’하며 마치 원래 계획된 것처럼 강론 묵상곡을 친 적도 있었다. 얼마나 간곡한 눈빛이었는지 신부님이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이야 이 모든 것들이 추억이 되어 즐거이 떠올리는 사건들이지만 당시에는 이 사고들이 뇌리에서 지워지지도 않고 얼마나 속에서 부대꼈는지 미사 반주가 부담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그리고 무시하면서 나를 부린다고 느끼면서 성당 ‘일’(?)에 지쳐갔었다. 예수님께 ‘왜 나는 이렇게 ‘일’을 해야 합니까, 미사의 은총은 제게는 없는 겁니까?’ 라고 여쭙기도 했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성가를 연주하고 그 가사를 곱씹어보면서 조금씩 해결 되어 나갔다. 나는 어느샌가 미사 반주를 ‘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반주는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인 것인데, 그것을 매번 ‘이건 내 일이야!’ 하며 나만 생각하며 활동했기에…, 주님이 계실 곳이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성당에서 미사 반주를 하는것만으로도 괜한 업무적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 ‘일’에 대해 본당 신자들에게 인정 받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제 나는 미사 반주 봉사를 하면서도 다사다난한 사건들을 마주하고, 해결하면서도 불편함이 느껴지거나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주님이 “카타리나야, 지금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니 잠시 네게 맡겨줄게”하신 일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에도 의연할 수 있고 차분하게 반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게 된 것이 바로 내가 찾던 미사의 은총이 아닐까?
이 카타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