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피해에 대한 인터뷰를 시작한 지도 만 4년이 흘렀다. 위험한 탈북경로를 거쳐 한국에 도착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북한이탈주민을 만나서, 북한에 있을 당시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한 인권피해 사실을 묻는다. 한국사회에 익숙하지 않아 걱정은 되지만 잘 적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북한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기반은 없지만, 한국은 열심히 일하는 만큼 벌고 그만큼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닌지 나에게 묻기도 한다.
이미 사회로 배출돼 한국사회에 정착을 하고 있는 특수한 인권피해 사실을 가진 대상자들을 인터뷰할 때도 있다. 한국 사회라는 게 참 녹록지 않지만 열심히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다부진 말을 들을 때가 많다. 그래도 북한보다는 낫지 않느냐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자유’가 없는 삶보다 낫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세계로 와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분들께 지나간 기억을 되살려 생각하기 싫은 과거의 일들을 들려달라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왜 조사하는지를 오래 설명한다.
마음을 열고 하나씩 이야기를 털어놓는 분들의 용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북한 당국에 의해 행해진 행위를 누구보다 많이 보았고 아직도 북한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 이웃들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결국은 이분들의 용기가 미래에 불거질 갈등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평균 2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심층인터뷰를 진행하면 1명이 증언할 수 있는 주요한 인권피해사건에 대한 파악을 마칠 수 있다.
사건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적 정보와 사건의 발생 시기, 장소, 정황 등을 묻는다. 1년에 60여 명의 증언자를 만나다 보니, 주어진 2시간 내에 듣는 이야기가 비슷할 때가 많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인권피해 양상이 전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매우 일반적이고 만연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년간 반복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북한이탈주민은 특별한 인권피해 사실이 없어도 정신적으로 인권피해를 입은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지금에서야 실컷 두려워하고 가해자들을 향해 마음껏 화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 대답을 거부하다가도 인터뷰가 끝날 쯤 눈물을 쏟고 속이 후련해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인권피해 조사가 하나의 상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상담’은 형식적인 조사도 아니고 정신치유를 표방하고 있지도 않지만 누군가 자신들의 피해를 입증하고 이를 제대로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아무에게도 쉬이 털어놓을 수 없는 경험을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만났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이나마 의지해주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