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고해성사를 하려고 20분 전에 성당에 도착했다. 판공(辦功)성사를 보려고 대림시기가 시작된 후 3주째 주일부터 일찍이 성당에 갔지만, 그때마다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교우가 많아 미루곤 했는데…, 더 이상 미루지 않으려고 매주 목요일 외부 신부님이 오셔서 성사를 주시는 시간에 찾아갔다. 고해성사를 본당 신부님께 하는 것이 부담된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성질대로 살 나이도 아니고 삶의 연륜이 있다보니, 생사를 걸고 다투는 죄를 짓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도 모르게 품격이 떨어지는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고, 늘 다짐하는 희생과 봉사는 하지 않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서 고해성사는 부담스럽다. 그러나 성찰하는 기회가 되여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통회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죄지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으면 깨끗이 포기하겠다고 정개(定改)하게 된다.
며칠 전부터 고해할 내용을 성찰했는데도 정리가 되지 않아 고해소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성찰을 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한 적이 있는가? 등등 7죄종(罪宗)을 성찰했다. 누구나 본성(本性)의 욕망이 있다. 그 중에 물욕은 위를 올려다보는 눈높이를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니, 탐내거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고, 혹여 과욕(過慾)을 억제하지 못해 지금까지 쌓은 작은 명예까지 잃을까 명예욕을 억제하며 시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아직도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보면 곁눈질하는 육욕(肉慾)은 살아있다. ‘건강하기 때문에 아직 내 몸 안에 존재하는 것이오니 용서해 주소서’ 마음 속으로 되뇌는 통회를 하면서 나이 먹어서도 주착(主着)없음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고해성사 할 때마다 빼놓지 못하는 단골 메뉴가 되지 않도록 정개하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이것저것 성찰하여 통회하고, 두 가지만 고해하기로 했다.
정년퇴임하여 의무적 일거리 없이 하루를 자유로이 보낼 수 있게 되면서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지금까지 가슴 뿌듯할 만큼 그리고 내 지갑이 가벼워지고 몸이 피곤할만큼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또 최근 주임신부님께서 본당에 봉사하는 책임을 맡기려하셨는데 그 책임이 내가 더 늙기 전에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이어서 순명하지 못했다. 이렇게 봉사할 기회를 피한 죄책감을 고백하여 사죄받고 싶은 것이 하나였다. 또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내 도움을 받고도 나를 멀리하는 친지(親知)의 처사(處事)에 섭섭하여 전처럼 자주 만나지 않고, 간혹 만나도 나도 모르게 데면데면 해져 살갑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수차례 했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용서를 하겠다고 기도까지 했는데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음을 고백하여 사죄받고 싶었다. 이 두 가지 일을 아주 짧고 조리있게 고해하려고 정리하면서 피고인 나를 내가 고발하는 이 고해성사가 하느님께 들어주실까?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 내내 묵상했다.
적막감이 도는 시간이 지나 정확히 2시가 되니 신부님이 들어오셨고 성사는 시작됐다. 고해할 내용을 정리하고 가다듬었는데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지루하고 조바심이 났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기다리는 50여 분 동안의 갈등을 모두 떨쳐내고 정리한 두 가지를 간결하게 고백했다. 신부님으로부터 보속을 받고 고해소를 나오는데 까지 3분 정도 걸렸을까? 이번 판공성사에서도 삶 속에서 반복되는 죄를, 그리고 큰 죄를 성찰하지 않고 고해소에서 조차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거짓말을 하는 죄를 지은 것 아닌가? 걱정됐다.
고해소에서 나와 바로 제대로 향해 무릎을 끓고 보속 기도를 했다. 영혼의 치유와 영적성장은 없었지만 판공성사를 해서 마음이 기쁘다. 보속이 가벼워서가 아니고 숨긴 사실이 전혀 없어서도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고해하지는 못했지만 고해성사를 함으로서 죄인으로 끊어진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 치유하고 나 자신과 화해하는데 걸림이 되는 마음 속 장애물을 조금은 걷어냈다고 생각하고 싶어서이다. 다시 나로 돌아가겠지만….
이은웅(토마스 아퀴나스·대전 대흥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