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입만 열면 바쁘다를 외치고 전화로 하는 안부인사도 “요즘 바쁘시죠?”다. 그리고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끝없이 밀려드는 업무에 시달리고 점심시간에도 허겁지겁 식사를 끝내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이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말 바쁜 것일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바쁜 삶이 아니라 부산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즉, 말로는 바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부산한 삶일 가능성이 높다. 이 두 가지 삶이 어떻게 다른지는 생활 속의 관찰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부산한 삶을 사는 사람의 경우, 약속시간 잡기는 그리 어렵지는 않은데 막상 시간을 정하고 찾아갔을 때 뭔가 어수선하고 대화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서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스마트폰이 울리면 얼른 양해를 구하는 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면서 통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통화가 끝난 다음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지요?”라며 어색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결국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했던 주제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자리를 뜨게 될 때도 있다. 그때 들려오는 이야기는 “요즘 제가 바빠서 그런데 다음에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지요”이다.
반면에 한번 약속을 정하려면 쉽지 않고, 또 만나는 시간도 정확하게(예: 30분 이상은 어렵습니다)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마치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사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해서 “바쁘면 도대체 얼마나 바쁘길래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약속을 정해 만나면 뜻밖에 편안한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날 때가 있다. 전혀 바쁘지 않은 듯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물론 대화 중에는 핸드폰도 울리지 않고(아마도 꺼 두었을 것) 그동안 나를 기다려 오기라도 한 듯 대화에 집중한다. 이런 사람과는 30분 정도만 만나도 몇 년간 고민해 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때도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자기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자신과 만나는 사람의 시간마저 귀하게 쓰고자 하는 진짜 바쁜 사람이다.
그럼 바쁜 삶과 부산한 삶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즉, 자신만의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하루하루의 삶을 사는지, 아니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부딪히는 대로 살아가는지 말이다. 이 부분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진짜 바쁘게 살아가거나 반대로 말로만 바쁘지 사실은 부산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 스스로 바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부산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겠으나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모습은 집중해야 할 때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점심식사를 하러 가서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주일미사 중에도 문자를 보내거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힘들어 하거나 등등이다.
어쩌면 우리는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일종의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도 같다. 또 그래야 남들 보기에도 좋고 뭔가 성취를 이루어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그것이 앞서 말한 진짜 바쁜 삶이 아니라 부산한 삶이라면 본인은 물론 주변의 지인들까지 다 지치게 만들지 모른다.
오늘도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해본다. 나는 요즘 바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부산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기도도 하게 된다. “오늘도 그저 그런 부산한 날이 아니라 제게 주어진 이 귀한 시간을 제대로 쓰는 바쁜 날이 되도록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