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먼 훗날에 너와 나 살고 지고, 영원한 이곳에 우리의 새 꿈을 만들어 보고파” 얼마 전, 서울의 한 결혼식장에서 이색적 광경이 펼쳐졌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의 기타리스트가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을 축가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지냈던 보통의 축가가 아니었지만 가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노랫말이 두 사람의 운명 같은 사랑을 온전히 담고 있었던 까닭이다.
두 사람은 한국인 관광객과 현지 여행가이드로 2009년 중국에서 처음 만났다. 단 세 번의 만남으로 서로 성씨가 같다는 기쁨에 의남매를 맺었다. 동정과 연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받아들여 주는 진솔함이 좋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말 못 할 아픔과 상처가 마음속 상흔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죄로 감히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견뎌야만 했고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중국인의 아이를 낳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늘도 무심했던가. 같은 해 7월, 그녀는 중국 공안에 의해 북한으로 보내질 위기에 처했다. 중국 공안은 한국 돈 1000만 원을 가지고 오면 강제북송은 시키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그녀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의남매를 맺었던 ‘오빠’가 지인을 통해 이 소식을 접했고 1000만 원을 구해 중국 공안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강제북송 된 상태였다. 생사도 모른 채 기약 없는 이별이 시작된 것이다.
기나긴 5년의 시간, 강제북송의 역경을 딛고 그녀는 기적처럼 탈북에 성공했다. 한국에 도착하면 ‘오빠’를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자신을 위해 돈을 가지고 달려왔던 오빠의 마음만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원을 나와 오빠의 이름 세 글자만으로 그를 찾아 나섰다. 말 그대로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였다. 간절한 마음은 하늘까지 감동시킨다고 했던가. 결국 8개월의 수소문 끝에 두 사람은 다시 운명처럼 만났다.
2014년 한국으로 오면서 그녀는 딸을 위해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여자로서의 행복보다 딸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그녀의 마음속 장벽마저 무너뜨려 버렸다. “부모가 자식에게 할 일이 있다. 딸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북한’, 아빠는 ‘중국’인데 한국에 아빠가 없다면 힘들지 않을까? 내가 ‘한국’의 아빠, 당신의 ‘여보’가 될게.”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평생을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
딸은 종종 아빠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아빠, 나를 더 사랑해? 엄마를 더 사랑해?” 그러면, 아빠의 대답은 한결같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를 더 사랑해. 엄마가 아빠를 사랑해 주는 것보다 우리 딸을 더 사랑하니까. 그러니 이제 우리 딸이 아빠를 더 사랑해 주면 좋겠다.” 통일은 먼 얘기가 아니다. 사랑이 곧 통일이다.
박현우(안셀모) 통일의 별(Uni Sta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