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간 자리, 하늘은 높고 청명하다. 은행나무는 어느 새 노랗게 물들었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심지어 길을 걷다보면, 땅에 떨어진 은행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은행을 보고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 집에 가지고 가겠다며 열심히 은행을 줍는 사람, 은행을 보고 잰걸음을 멈춰 잠시나마 가을정취를 느끼는 사람, 은행의 독특한 냄새가 행여 신발에 묻을까 까치발로 조심조심 걸어가는 사람. 이처럼 작은 ‘은행’ 하나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은행’과 닮아 있다.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 그냥 지금처럼 남과 북이 따로 사는 게 좋겠다는 사람, 통일 과정에서 주변 열강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람, 통일은 우리의 미래로 경제발전의 새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사람, 냉전의 산물인 분단을 끊고 통일을 이뤄내 민족동질성 회복과 항구적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사람, 통일의 그날을 위해 우리 모두의 뜻과 의지를 모아 실질적 통일준비를 해나가야 한다는 사람. 어쩌면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은행’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과제일 수 있다.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는 나무 중 가장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100년으로 우리나라 최고령을 자랑한다.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조선 세종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정도로 소중하게 여겨져 선조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 왔다. 할아버지가 심으면 손자 때에 가서 열매가 맺힌다는 은행나무. 비록 자라나는 속도는 더디지만 다른 수목에 비해 훨씬 오래 살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이유에서 은행나무는 예부터 ‘교육의 나무’를 상징하기도 했다. 인내와 끈기로 대를 이어 지식을 전수하고, 그 과정을 통해 지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은행’의 뿌리인 ‘은행나무’처럼 ‘통일’의 본질인 ‘한반도 평화와 번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비록 더딜지라도 대를 이어 열매를 맺는 은행나무처럼,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심어놓은 통일의 씨앗이 손자 세대인 청년들에게 전해져 풍성한 열매로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지혜와 경험이 젊은 세대에게 계승·발전돼야 한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청년 세대는 비로소 통일을 향한 지혜의 열매를 대를 이어 소중하게 가꿔 나갈 준비를 마칠 수 있다. 마치 용문사의 은행나무처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향한 청년들의 새로운 꿈과 희망이 머릿속 지식에서 가슴 속 지혜로 이어져 그 어떤 열매보다 풍성한 결실로 영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시작이다. 우리들의 소중한 통일 은행나무는 오늘도 조금씩 천천히 자라나고 있다.
박현우(안셀모) 통일의 별(Uni Sta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