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를 선물로 받으면 기쁘면서도 내심 곤란한 마음이 들곤 했다.
주일학교를 다닐 적부터 지금까지 받은 묵주의 개수는 헤아리기를 포기했다. 분명 기도할 때 묵주는 하나만 있으면 족한데, 어디선가 계속 묵주가 들어온다. 첫영성체, 견진성사 때 받은 선물부터 성지를 다녀온 지인 준 선물로, 혹은 성당의 어떤 행사에서 받았고, 언제부터인가 팔찌묵주가 유행하면서부터는 색색의 팔찌묵주들도 생겼다. 버리자니 축복받은 물건이라 찜찜하고, 쓰자니 너무 많다. 그저 묵주를 담는 상자를 하나 만들어 사용하지 않는 묵주를 한 곳에 모아 두게 됐다.
새로 묵주가 늘어날 때마다 ‘이 묵주도 상자 행이겠구나’ 하며 본래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묵주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분명 ‘보물단지’여야 할 묵주함이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로 여겨지는 것은 마음 한 편이 따가워지는 일이다.
2년 전 사제품을 받는 친척에게 축하인사를 전하기 위해 서품식을 찾았다. 당시 2살이었던 딸 로즈마리가 낯을 심하게 가리고 우는 소리도 무척 큰 편이라 걱정되기는 했지만, 가까운 친척이 사제가 되는 터라 꼭 찾아가 축하해주고 싶었다. 서품식이 열리는 체육관에 들어가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쉽게 그치지 않는데…. 여기까지 와서 밖에서 기다려야 하나….’ 서품식 시작을 앞두고 걱정이 한 무더기로 쏟아졌다.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곁에 계시던 한 할머니 한 분이 아이를 달래면서 손에 쥐고 계시던 묵주를 보여 주자 울음을 뚝 그친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아이가 묵주를 보고 울음을 그친 것을 아시고는 묵주를 그대로 아이에게 주셨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상황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묵주를 받으면서 그토록 고맙고 감사하다고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묵주가 다시 ‘보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아이 손에 쥐어진 묵주 덕분에 사제서품식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로즈마리에게는 여전히 묵주는 보물인가 보다. 집에 있는 묵주도 좋아하지만, 할머니 집에 가면 꼭 묵주상자를 꺼내서 진열하고 다시 담고. 묵주가 그렇게 좋은가 싶다. 아마 아직 묵주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물건인지 성모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묵주를 좋아하는 로즈마리를 보면 참 대견하다. 한편으로는 묵주기도 소홀한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아이에게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로즈마리는 노래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특히 좋아하는 노래가 “성모님 손잡고 언제 어디나 가리라~”하는 노래인데, 시도 때도 없이 어찌나 씩씩하고 우렁차게 부르는지 모른다. 앞으로 하느님께서 우리 로즈마리와 묵주 사이에 어떤 인연을 더 놓아주실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열심히 부르는 그 노랫말처럼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성모님 손잡고, 예수님 손 꼭 잡고 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고자 다짐하면서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