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듯한 인생살이에서 사람들은 종종 농담 반 진담 반 “인생살이 뭐 별거 있나요? 다 먹고 살고자 하는 일인데…”라고 말하며 평소보다 조금 과용하더라도 맛있는 식사를 한 끼 나누는 모습을 보곤 한다. 팍팍한 삶의 여정을 위로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본질적인 것을 성찰하게 하는 지혜일 것이다.
필자는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았는데, 라디오에서 다음과 같은 음식점 광고를 들은 적이 있다.
“잘 준비된 맛있는 식사 후에는 원수 같은 일가친척도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그 당시 ‘아! 그렇다!’ 맞장구를 치고, 바로 평소에는 갈 수 없었던 한국 식당을 찾아가 고향 음식 한 그릇을 먹으면서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10월에 열리는 다양한 행사 중 ‘행복’에 관한 주제들이 눈에 띈다. ‘2016년 대한민국 행복교육 박람회’, ‘2016년 아시아 미래 포럼’ 등의 행사가 그 예다. 이 행사들은 ‘꿈’, ‘끼’, ‘행복’, ‘지구 행복지수’, ‘생산 숫자를 행복의 지표로 삼기를 중지하기’ 등등의 키워드를 내세워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행복이란 사람들이 실제적 삶에서 받는 다양한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요소와 관련된다. 그중에서 먹고 사는 문제, 즉 ‘어느 정도’의 의식주 해결은 중차대한 문제다. 우리사회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의식주를 둘러싼 안정의 부재로 불행을 느끼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약 2400년 전 공자와 맹자도 항산항심(恒産恒心), 즉 ‘일정한 생산이 있으면 마음이 변치 않는다’, ‘먹을 것이 있어야 윤리도덕도 나온다’고 했다.
이 시대는 소득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된다고 한다. 소득의 증가와 행복 지표가 어느 수준까지는 비례해 증가하다가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비례 하지 않는다는 연구 발표도 있었다. 그러나 소득증가가 사회적 신분과 지속적인 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숙제다. 따라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 기업, 교육,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치열한지 피부로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의식주가 어느 정도 안정된 사회 계층이 담당해야 할 몫도 있다. 약 2400년 전 공자와 맹자는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슬퍼하고, 악행을 수치로 여기고, 남에게 양보하고, 옳고 그름의 분별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저성장, 무한경쟁, 부의 격차 심화라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가진 것을 늘리기는 고사하고,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 더욱더 자기중심적이 되어 간다. 사회적으로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갈등 구조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온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연결되어 있고, 나비의 작은 날갯짓으로 인해 생긴 파동 하나가 이 우주의 파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다와 북한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나라인 대한민국 생명 공동체가 사용 가능한 재화와 물질은 한정돼 있다. ‘어느 정도’의 의식주 해결에 있어서 누군가 필요 이상 지나친 욕심을 부린다면 그 피해는 바로 이 사회의 약하고 힘없는 생명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들이 아프면 대한민국 생명공동체가 병들게 된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모르는 척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다. 십시일반 마음을 보태어 이들을 돌본다면 ‘나비의 날개 짓처럼’ 우리사회가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시대는 ‘풀뿌리 운동’, ‘아래로부터의 변화’, ‘안으로부터의 변화’에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