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가며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신혼 초에는 별다른 문제가 안 되던 것이 인제 와서 문제가 되는 것이 있고,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양말을 벗어 빨래통에 넣는 것부터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거는 것까지 아주 소소한 일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게 바로 부부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말해주는 면면들이다.
처음에는 서로 이러니저러니 지적도 하고, 왜 그런 식으로 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여러 번 말을 해도 변화가 없으면 포기하거나 때로는 짜증을 내기도 한다. 알고 보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 차이에서 오는 일들이다. 나도 모르게 굳어진 행동이니 말로 몇 번 한다고 해서 쉽게 고쳐질 리 없다.
그런데 문제는 세월이 꽤 많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정도 이야기하고 또 지적을 했으면 바뀔 만도 한데 말이다. 예를 들어 필자의 경우, 싱크대 문이나 밥통을 열고 나면 잘 닫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아내로부터 자주 “아니, 문을 열었으면 닫아야지. 왜 그렇게 문 닫는 것을 잊어버려요?” 하는 소리를 자주 들어야 했다.
반면에 아내는 겉옷을 거실의 의자나 문고리에 걸어두는 편이다. 정해진 위치가 아닌 곳에 뭔가가 걸려있는 모습은 거실을 깔끔하게 관리하고 싶은 필자의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아니 옷은 옷장에 넣어야지 왜 아무 생각 없이 여기다 슬쩍 걸어두는 거요?” 하는 핀잔을 아내에게 하곤 했다.
서로 불편해하는 내용이나 기준이 달라서 벌어지는 일이었고, 상대방 입장을 덜 배려해서 생긴 일이었다. 아마도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머리로만 이해한다고 했지, 사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만 맞춰 상대방 행동이 바뀌기를 기대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결혼하고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이제는 서로 지적하기보다는 그냥 알아서 행동으로 옮길 때가 많다. 필자는 의자나 문고리에 아내의 옷이 걸려 있으면 옷걸이에 걸어서 옷장 안으로 집어넣는다. 또 아내 역시 싱크대 문이 열려 있으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닫아 준다. 서로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기보다는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물론 함께 사는 이의 마음이 가는 곳도 헤아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부로 함께 한 세월의 결과다.
이런 마음으로 한 가지 더 배려하는 일이 있으니 서로 상대의 일정을 챙겨주는 것이다. 특별히 기억력이 아주 나빠진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한 주간 동안 각자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서도 금방 잊어버릴 때가 있다. 중요한 일정은 수첩에 적어 두긴 하지만, 그래도 깜빡할 때가 자주 있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하다가도 생각나는 일정이 있으면 서로 확인해 주곤 한다. 재미있는 것은 자기 일정은 잊어버리면서 상대방 일정은 더 잘 생각나는 것이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매니저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신문기사나 TV 프로그램에서 ‘매니저’라는 말이 나오면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이 고용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이 들어가는 부부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매니저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 것 같다. 특히,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진 습관 때문에 고치기 힘든 행동에 대해서는 그걸 고치라고 지적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행동에 옮기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어차피 부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내 일 네 일이 없고, 결국 한 몸이 되어 사는 것이기에 그렇다. 오늘은 내가 그대의 매니저, 내일은 그대가 나의 매니저!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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