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00세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고, 보다 충만한 노후생활에 대한 토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기능들은 내려놓는 대신, 새로운 기능을 획득하는 인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볼 수 있게 되고, 깨닫게 되는, 그런 의미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퇴화가 아니고 또 하느님의 인간창조 과정에 포함된 또 하나의 진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화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기대가 실제 현실의 삶에서는 잘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가운데, 각 개인은 노년빈곤으로 인해 삶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가지기 힘들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제력은 세계 91개국 가운데 80~90위 수준을 맴도는 거의 최하위 수준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겪을 현실이라고는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인생 끝부분에서의 노인빈곤은, 맹자가 인생 3대 악재로 꼽을 만큼, 본인뿐 아니라 주변 가족과 친지에게도 고스란히 삶의 무게로 다가가 노인의 삶의 존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가난하면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노인자살 연구에 의하면, 그나마 통계에 잡힌 것이 이 정도인데, 실제로는 노인들의 삶이 너무도 힘이 들어, 그냥 곡기를 끊음으로써 인생을 마무리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이 자연사로 분류되고 있는 것을 포함하면, 노인자살률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왜 대한민국 노인들은 구미 선진국의 노인들에 비해 몇 배 더 열심히 일해서 대한민국을 키워 놓고도, 말년은 더 비참하게 보내야 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노인들은 OECD 노인들보다도 3배나 더 일을 하고 있지만, 훨씬 가난하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연금혜택의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월평균 50만 원 이하의 연금을 수령하는 노인가구가 80%를 넘는다. 외국의 경우, 국가의 복지제도와 연금이 안정된 노년을 보장해 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에도 국민연금이 생겨 국민들의 노후연금을 지불하는 구조가 정착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 될 수 있으나, 국민연금 운용의 낮은 수익률은 연금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동시에 실제적인 노인 삶을 유지하는 데에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모두의 생존에 관련된 절박한 문제인데, 정작 우리나라의 수익률은 세계 6대 연기금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4년도 통계에서도, 일본(18.5%), 미국(16.2%), 노르웨이(15.9%)의 1/4 수준에 불과한 4.2%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고, 3년~5년 누적치를 보더라도 이들 국가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채권위주의 타성적인 연금운용 전략도 문제지만, 최근 보도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국민연금이 본래의 목적인 대한민국 국민의 노후인생을 위해서가 아닌, 정치적 논리와 특정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을 들으면, 절박한 한국노인들의 생명줄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데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국민연금이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영향받지 않을 수 있는 독립적 운용과 경쟁력 있는 운용을 통해, 이제는 정말 선진국 수준의 내실 있는 연금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 노후의 삶을 절벽으로 내몰지 않을 수 있는 길이요, 소리 없는 자살로 완성되어야 할 삶의 마지막 부분을 정리하는 노인들의 숫자를 줄일 수 있는 중차대한 일임을 이제는 함께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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