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2일 오후 7시44분 경주에서 진도 5.8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전국이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텔레비전에선 재난상황 뉴스가 3분 뒤인 47분에 방송됐고, 청와대에선 뉴스가 나간 후인 오후 7시51분에야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심야 시간에는 장관의 꿀잠을 깨우지 말고 아침에 상황보고 하라” 했다는 것이다. 그런 보고 방식 문제로 국정감사에서 시끌시끌했다. 해괴망측한 실책이다. 20여 년 전에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발급 받으러 OO등기소에 갔다가 이와 유사한 사건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당시엔 대기 번호 발급기가 없어 20여 명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에 있던 중년의 여인이 담당 공무원과 시비가 벌어져 줄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알아보니 민원인이 글씨를 잘못 썼다고 담당 공무원이 짜증을 내는 것이다.
“아주머니! 똘아이같이 몇 번이나 틀립니까?” “뭐요? 누나 같은 민원인한테 똘아이라니요?”
“똘아이같이 썼으니까 똘아이라 하지요?”
나는 그 여자 민원인을 제치고 그 담당 공무원에게 항의했다.
“당신 공무원이야? 공익근무원이야? 민원인에게 똘아이라고 욕하는 공무원이 어디 있어?” 그런데도 그는 사과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퉁명스럽게 반항했다. 정당하게 항의했지만 다른 민원인들에게 업무 방해를 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재차 “당신 공무원이 맞아? 등기소장 빨리 나와?”라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카운터에 앉아 있는 담당 공무원을 쏘아보았다. 다른 사람이 겨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총무과장이 나타나서 “죄송합니다. 제가 총무과장인데 다시 교육을 잘 시키겠습니다” 하고 사과를 했다.
나는 당사자의 사과만 받으면 항의를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황소처럼 눈만 깜박거렸다. 등기소장을 빨리 오라고 큰소리를 쳤는데도 당사자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무관심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OO법원 총무과장 전화 바꿔!”라고 더 크게 소리쳤다. 사과할 때까지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제서야 당사자를 포함해 칠팔 명이 내 옆에 와서 고개를 숙인 채 사과를 했다.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고참인 듯한 공무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내 신분을 밝혀내려는 듯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었다. 잘못 대답했다간 관명 사칭으로 오해받을 것 같아 당당히 대답했다. “서울 효자동에서 왔소 왜?” 무심결에 거주지를 말해 버렸다. 그러자 공무원들이 수군거리며 벌벌 떨었다. “우리들은 죽었다. 청와대 감찰반에서 나오셨나 봐!” 그들만의 착각에 웃음이 절로 났지만 억지로 참았다. 총무과장이 근무를 중단하고 내 주변을 맴돌며 안절부절 했다. 소란을 피운 사이 다른 공무원이 그 여자 민원인한테 수수료도 받지 않고 등기부등본을 발급해 주었다. 내 뒤에 있는 민원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 번 혼날 줄 알았다고 또는 잘했다고 훈수를 해주었다. 훈계를 너무 오래 하면 공무 방해도 되고 더욱이 평범한 신분이 큰소리친 것 자체가 무례이므로 이 정도로 경종을 울려주고 총무과장에게 “똑바로 하세요”라고 당부하고 등기소를 빨리 빠져나왔다. 모처럼 힘없는 서민이 큰소리 한 번 쳤더니 속이 시원했다.
실수를 빨리 사과하고 바로 고치지 않으면 사회 질서는 무너지고 자신도 발전할 수 없으며 인간관계에서 고립되기 마련이다. 경주 지진 사고 때 아첨으로 먹칠한 관료주의와 국민 경시 풍조가 민심을 멀리하는 것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아직도 사회 구조적으로 선진국 수준에 미달한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