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밀면 바다가 되고 썰면 육지가 되는 곳에서 건너온 실향민들. 연안과 교동은 한 동네였다. 이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조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왕래하며 살아왔다. 장날이 되면 교동주민들은 식량과 물자가 풍부한 연안장을 보러 강을 건너오기도 했다. 농번기가 되면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 연백평야에 건너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생활문화와 언어가 같은 이곳은 혈연관계인 사람들도 많다.
1·4후퇴 때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교동으로 피난 온 한 어르신은 이웃집에 놀러 가듯이 배를 타고 식량을 싣고 건너왔다고 했다. 가족과 친지 대부분이 함께 나온 터라 곧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에 내일모레 동동하며 교동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 전쟁 전 이들의 고향은 정감이 있고 아기자기한 어릴 적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전쟁의 두려움과 이산의 고통으로 아픈 기억과 마음의 상처를 간직하고 고향에 대한 기억을 지우며 살아간다. 85세 되신 김옥전 할머니는 20세 꽃다운 나이에 밤에 나룻배를 타고 교동으로 건너오게 됐다. 아기 울음소리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물에 빠지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평생 고향생각을 지우며 살아가고 계시다.
통일 역량을 창출하는 것은 나쁜 기억보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감성으로 서로에 대한 정보와 이해를 넓혀갈 때 가능하다. 더 늦기 전에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이 고향에 대한 좋은 추억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도록 치유의 시간과 표현의 기회를 드려야 한다. 또한 이질감보다는 동질성을 찾아 통일공감을 더해 가는 노력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역사와 문화, 예술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살리고 하나로 이어줄 수 있는 중요한 틀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을 추진해 민간인들의 왕래도 잦았다.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 6·15 공동선언 4주년과 국제스포츠 행사에 남과 북 대표단들이 함께 인천시청에서 기념행사를 갖고 마지막 행사로 강화도로 역사문화기행을 다녀가기도 했다.
창건신화와 선사시대 그리고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소개되고 있는 강화도 역사문화는 남과 북 학생들이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공통적인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참가자들은 하루종일 강화 역사관과 전적지를 돌며 각자의 나라에서 같은 역사를 공부한 경험을 나눴다. 아직도 하나의 민족임을 느끼며 많은 대화를 공유했던 좋은 기억이 마음 깊이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비춰볼 때 체제경쟁과 군사대결보다는 서로의 공통점과 동질성을 찾아 차이점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민족통합에 효과적일 것이다.
교동도 실향민들의 오랜 기억에 교동은 조강 하나 사이로 연안군(구 연백군)과 생활문화, 언어, 음식문화가 같고 혈연관계가 있는 이웃이다. 평화의 섬 교동은 역사문화 교육과 평화인성훈련, 살아계신 실향민들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같은 민족으로서 동질성 회복을 통한 통일역량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김영애(데레사) (사)새우리누리 평화운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