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1절부터 5절까지 읽다가 3절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겨울은 누군가에게 밥은커녕 물 한 모금도 넘기기 힘든 어려운 시기일지 모릅니다. 인색한 건물주는 하필 춥디추운 겨울에 갈 곳 없는 이에게 임대료 인상을 말합니다. 못 내면 당장 비우라고 인격 없이 말을 합니다.
성실하게 발 버둥거리며 일해도 소리 없이 올라가는 국민연금, 매달 늘어나는 세금, 월세, 생활비 등 이유 없는 고난이 힘들기만 합니다. 자영업자에게 건강보험료 인상은 핵폭탄보다 무섭습니다.
이런 일을 겪는 친구가 울상을 찌푸립니다. 왜 누구는 금수저인 채 태어나고 나는 흙수저도 되지 못한 흙이냐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데 억울한 것 같다고.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고.
이 말에 “돈과 여자는 쫓아가면 달아나는 법이니 쫓아가지 말자”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정작 말을 하는 이도 듣는 이도 위로가 되질 못합니다. 그래서 분노할 기운은 없어진 지 오래고 통제되지 못한 눈물이 눈가에 맺힙니다.
이때 우리는 세상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불평도 하고 버겁게 살아가는 이들의 건물 임대료로 20대가 해외여행 다니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이런 약한 언행에 말씀해 주시는 듯합니다. 마치 잠시 걱정을 잊으라는 듯. 한 걸음 더 나아가 걱정을 없애겠노라는 듯.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처음부터 눈먼 사람으로 태어나길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부모나 조상, 그리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하느님은 왜 눈먼 사람으로 태어나게 만드시냐는 제자들의 물음에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게 다 하느님이 장님을 통해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그런데 하느님의 영을 가진 자만이 결국 알게 되겠지요. 하느님의 일을요. 잠시나마 하느님 앞에 서려 하지 않고 사람 위에 올라서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