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청탁금지법’(약칭)이 시행되고 공직자들 사이에 긴장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가고 있던 무렵, 제대로 된 사건 하나가 터졌다.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만 천하에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국회, 검찰, 청와대, 촛불집회 등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과 ‘감추고 축소하려는 이들’ 사이의 밀고 당기는 긴장이 정점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법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검찰조사’, ‘국회청문회’, 헌법재판소 탄핵 가부결정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청탁금지법’ 시행에 특별한 관심과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던 본인은 최근의 벌어진 사태들이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바람’이 거짓 세상의 한 자락을 살짝 열어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시민들은 분노와 자괴감에 머무는 대신 이 사회를 정화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주권자인 시민들은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이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바람직한 대리자’를 선택하는 일이다. 생활 전선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국민들이 매번 나설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본인은 다음과 같은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참여할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과 일부 시민들의 억지와 망발, 국회 청문회에서 모르쇠를 듣고 있노라면, ‘아!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악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고 넓게 확산되어 있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러한 상황은 어느 누가 국민의 ‘대리자’로 선출되어도 소신껏 직무에 전념하기 어려운 구조, 즉 ‘대리자’에게 주어진 권한이 특정 무리의 이익에 이용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양산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범법사실이 철저하게 수사를 받고,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법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배우자! 농부와 정원관리사들은 늘 잡초 제거에 많은 힘을 쏟는다. 그렇지 않으면 밭과 정원이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잡초를 제거할 때는 힘이 들어도 뿌리까지 다 뽑아야 한다.
진실의 촛불을 밝혔던 시민들은 이 사건의 결과로 누구에게 득과 실이 되었는지 셈하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 누가 국민의 ‘대리자’가 되던 ‘그 나물에 그 밥’일 것이라는 불신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요즘 차기 대선 후보들 평가에 ‘고구마’와 ‘사이다’론이 등장한다. 국민 편에서는 ‘고구마’와 ‘사이다’ 둘 다 함께 먹고 싶다. 또 다른 좋은 메뉴들이 있다면 환영한다. 지난 7월 20대 국회는 특권을 내려놓고 미래를 위한 창조산업, 남북 간 문제, 빈부의 격차 등을 해결하기로 동의한 바 있다. 여기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는가? 공연히 명확한 명분도 없어 보이는데, 서로의 의견 차이를 극단적으로 몰고 나가, 차별화하고 마침내 이를 통해 떨어지는 사적인 이익에 골몰하는 듯 보인다. 공동선을 위한 대안들을 두루 섭렵하며 나라 살림을 하는 리더가 목마르다.
요즘 의식적으로 여러 부류의 언론 보도를 접했다. 하나의 객관적 사실을 중심으로 다양한 뉘앙스가 만들어진다.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언론도 있지만, 사실을 짜깁기하고, 흔들리는 시류에 몸을 맡기는 ‘기레기’형 언론들도 있다. 이와 더불어 여기저기 난무하는 가십거리들도 넘쳐난다. 때로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거칠고, 폭력적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보상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를 넘으면 본질을 잃게 된다.
이제 아기 예수님 모실 자리를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아야 하는 시간이다. 2000년 전 베들레헴의 상황과 다르게 2016년 대한민국은 모두가 각자의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그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기를 희망해 본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