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금년에도 성탄절이 다가왔다.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들이 터져 나오고 백화점과 가게들은 각종 성탄 용품들로 가득하다. 교회와 성당들은 형형색색의 장식으로 화려한 성탄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왠지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도 그다지 밝지도 못하고 어깨는 힘이 빠져 있으며 발걸음은 무겁게만 느껴진다.
왜 메시아가 인간 구원을 위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는, 참으로 거룩하고 고귀하며 인류 최대의 경사일이어야 할 성탄절이 전례 없이 우울하고 쓸쓸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은 금년 한 해를 되돌아보면 누구나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으리라. 한 마디로 메시아가 오실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사실이다.
2천 년 전 그 마구간은 비록 가난하고 춥긴 했어도 그곳은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자리였다.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이루는 성가정이 있었고 목동과 마소의 넉넉한 훈김이 있었으며 그의 탄생을 경축하는 천상과 지상의 고요하면서도 우렁찬 찬송이 있었다.
그러나 94년 성탄의 때는 어떠한가. 애지중지 키워 외국 유학까지 보낸 자식이 거액의 유산을 성급히 노려 부모를 잔인하게 죽여 불태우고 거만한 부자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20대의 살인조직이 무고한 시민을 4명씩이나 처참히 죽였으며, 여성들을 탐욕의 노리개로 삼다가 끝내는 죽여 아무렇게나 내다버린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이 인간의 껍질을 쓰고 섞여 살아온 곳이 바로 오늘의 이 땅이다.
그뿐인가? 전국 어느 곳 하나 예외 없이 터져 나온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다리가 끊어지고 배가 불타고 대도시 한복판에서 가스가 폭발해 수많은 사람이 살상된 사고공화국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올해는 세계적으로도, 또 우리 교회도 「가정의 해」임을 외치며 그토록 가정과 가족의 역할과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비가정적이고 탈가정적인 사건이 두드러진 해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인간성의 상실과 위기적인 상황을 총체적으로 경험한 때이기도 하다. 과연 이런 곳에 메시아가 오실 수 있겠는가? 무슨 낯으로 그분을 와 주십사 요청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만일 우리에게 메시아가 정말 오시지 않으면 어찌 되는가? 우리에게는 내일도, 희망도, 구원도, 영생도 없다. 오직 죽음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만사들 제쳐놓고, 가장 시급히 메시아 오실 길을 닦아야 한다. 마치 구약의 세례자 요한처럼.
그 길은 오로지 우리의 뼈를 깎는 회개와 보속만이 닦을 수 있고 열릴 수 있는 길이다. 모두가 그 길 닦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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