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그리고 연말연시여서 그런지 거리는 온통 설렘이다. 여기저기를 가고 오는 카드와 연하장, 선물을 위해서 잊고 지냈던 사람들의 먼지 쌓인 주소록을 헤치며, 올해 안에 모든 것을 청산해야 하는 빚진 사람처럼,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도 세상 분위기에 휩쓸려 골머리를 쓰면서 온통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시기이다. 성탄과 연말연시여서 분주한 것만이 아니라 세계화 국제화 때문에 전 국민이 분주한 것 같다.
국제화 세계화로 시작된 방송은「동해물과 백두산이…」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앵무새처럼 떠들어대고 연일 일류만이 살아남고 이류는 도태되고, 국내가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경영해야 하고, 세상은 일등만이 기억되고 이등은 기억되지 않고 무한경쟁에서 이기는 길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나는 영국의 경찰이, 나는 덴마아크의 농부가, 나는 일본의 디자이너가…경쟁상대」라고 경쟁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살벌한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으로 점철된 도전과 응전이라는 인류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습을 부추기며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고뇌와 고통의 또 한 세기를 준비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나의 경쟁자를 꺾어야만 내가 살 수 있고, 경쟁의 패배는 삶의 절망이며 낙오이기에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을 심어주고 있어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강대국의 보호무역과 무한경쟁에 맞서야 하는 약소국가의 서러움과 비애가 서려져 있는 듯하다. 그러면 진정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국제화 세계화인가? 또 우리는 이 시기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지난 60년대 초「잘 살아 보세」를 외치며 시작된 경제 개발은 있는 것 없는 것 다 모아 팔아 수출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 속에 모든 이를 수출 전선의 역군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잘 사는 것의 의미가 인간 삶의 질이 아니라 양적인 팽창이라는 사회적 가치관을 형성시켰다. 양적인 팽창을 위해서는 부당한 수단과 방법까지도 미화시키며 수많은 이들의 아픔의 절규와 고통의 눈물을 외면한 채 오늘 이 시기까지 내달려 왔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세상에서 인간은 제외되고 물질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오류가 남긴 고통을 이 시대를 살면서 겪고 있다. 물질의 팽창과 물질의 안락을 위해서는 온갖 부정한 방법이 다 동원되어 훔치고 죽이고 싸우는 세상이 되었고 더 나아가 나의 논리가 정의요, 나에게 유리한 것이 윤리가 되어 양심 불감증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는 사회가 되었다.
세계 속의 한국을 알리고 세계 속을 관계하며 살아가기 위한 국제화 세계화는 물론 좋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화 국제화 속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화 국제화에 필요한 윤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세계화 국제화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맹목적인 물질의 추구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진정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아가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류만이 살아남고 이류는 도태되어야 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일류 이류가 함께 어울려 서로를 위하고 더 나아가서는 언어와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로서 세계 공동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세계화요 국제화가 아니겠는가?
교회는 이러한 세계화와 국제화에 대해서 사회 교리와 대 사회 회칙을 통해서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인류 전체의 공동 발전과 아울러 모든 국가들이 형제관계를 맺어 상호 유대와 연대성 안에서 세계의 공동선과 세계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진정한 발전은 단순한 경제적 발전 그 이상의 의미로서 문화적 정신적 차원에서의 인간의 진보이기에 모든 인간의 발전을 위한 국제적인 지원과 협력을 통한 연대성을 이룩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세계의 평화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민족들의 발전 43-75, 사회적 관심 41-45).
이것을 위해 오늘 이 세상에 예수 아기가 탄생하셨다. 일류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없는 (이사 65, 26) 「세상을 위해서 일류도 살고 이등도 기억해 주는 세상을 위해 꼴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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