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녀온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조각 ‘사비니 여인의 납치’를 본 순간 발이 절로 멈춰졌다. 이 조각은 로마가 건국 초기 부족한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비니 부족의 여성을 납치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조각 속 여성의 공포에 질린 표정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시공간을 막론하고 전쟁에서 약자로 전락하는 여성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전선이 오가며 치열해진 전투 중에 생긴 피해는 물론이며 후방에서 이산가족 또는 납북자의 가족이 된 여성도 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반세기 이상 정전체제가 고착화되면서 북한 여성에게 나타난 변화일 것이다. 북한이 전투적인 군사문화를 추구하면서 여성들의 권리가 더욱 억압받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동등함을 보장한다고 선전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지금도 당과 군 지도층에서 활동하는 여성은 소위 혈통이 좋은 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전통적인 남존여비 사상이 철폐되지 않아 가부장적 문화가 자리 잡았다. 그 결과 북한에서는 경제난 시기 직장생활에 더 큰 책임이 있던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천박하다고 인식됐던 장사 등에 나서며 가정의 생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국경선을 넘어본 여성들이 먼저 탈북의 주체가 된 사실은 압도적으로 많은 탈북 여성의 비율로도 증명된다. 그러나 탈북에 성공하기까지 수많은 북한 여성들이 북한군은 물론 중국인들로부터 성적 학대 등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사실은 국제사회에서도 북한 인권침해의 중요한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탈북에 성공했다고 북한 여성의 수난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몇 해 전 하나원에 마련된 종교 시설을 방문했을 때 한 수녀님과 탈북자 간 대화를 들었다. 수녀님은 “여기서 나가면 여러분이 한 달에 얼마씩 벌 것 같아요?”라고 묻자 “200만 원쯤?” “300만 원 정도?”라는 답변이 나왔다. 그러자 수녀님은 “절대 그 돈 못 벌어요, 100만 원 벌기도 쉽지 않다는 점 꼭 기억하세요”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나원에서 나간 뒤 기대와 너무 다른 현실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아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부 성공케이스를 제외하면 아직도 탈북 여성 다수는 매우 불리한 위치에 처해있다. 물론 북한에 비하면 훨씬 낫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이 공고한 한국사회에서 탈북여성은 약자 중의 약자가 분명하다. 최근에는 번듯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노래방 도우미 등 성(性)을 상품화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탈북여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탈북 여성들이 북한에서, 그리고 탈북 후에도 겪는 어려움은 따로 떼어 볼 일이 아니다. 이들은 전쟁과 대립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북한 여성들의 진정한 인권을 위해서라도 분단문제의 해결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