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일이었다. 편집학원을 다니는 친구를 바래다주러 저녁시간에 전철에 올랐다. 마침 10량짜리여서 조금 한산했었는데, 잠실역을 지나자 기대했던 대로 자리가 나서 친구와 함께 앉았다. 한참 대학원 졸업논문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다행이라 생각하고 논문 초고를 꺼내어 열심히 교정을 보았다. 친구와 함께 글자 틀린것, 띄어쓰기 등 열심히 논문교정을 보고 있는 사이에 강남역을 지나면서 점점 승객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걱정이랴! 우리는 지금 앉아있고 또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지 않은가?
잠시후, 옆에 앉아있던 승객이 일어서면서, 『할아버지 이리로 앉으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보고 남루한 옷차림의 할아버지 한분이 출입문쪽 모퉁이에서 걸어오고 계셨다. 그런데 몸이 불편하신지 아주 천천히 힘들게 움직이셨다. 얼굴이나 옷차림이 형편없으신 것을 보니, 아마 거리에서 사시는 분 같았다. 먼저 알아보고 일어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나는 그분 이 가능한 한편이 앉으시게 옆으로 엉덩이를 조금 옮겼다. 이렇게 해서 상황은 일단락됐고, 나는 계속 논문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옆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잠깐나는 냄새려니 하고 계속 책을 보고 하는데, 점점 심하게 고약한 악취가 풍기는 것이었다. 끙-끙. 분명히 옆에 않은 할아버지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앞에 서 있는 사람들도 조금씩 물러섰고, 나도 역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숨을 쉬려 하였다. 에이!좀 편히 앉아서 가나했더니, 옆자리에 이런 할아버지가 앉을게 뭐람! 이러다가 영등포까지 가는것이 아닌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냄새를 꾹참고 어서 이 할아버지가 내리시기만 기다렸다.
잠시후『학생, 4호선 타려면 사당역에서 갈아타는 것이 맞는가?』하고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예, 내릴 때 되면 제가 말씀드리지요』하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희망에 가득찼다. 야호! 두 정거장 뒤에 할아버지가 내리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윽고 전철은 사당역에 도착했고, 나는 힘차게 이를 알려 드렸고 할아버지는 내리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리지 앉으셨다! 할아버지는 내 옆에 그대로 꼭 붙어 앉아 계셨다. 그분의 모습도, 그분의 냄새도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 그분은 이제 내 양심에 들어와 앉으셨다. 나는 이 할아버지를 멀리 했지만, 내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그분을 맞아들여 옆에 앉게 하셨던 것이다.
아! 천주강생의 신비여,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2천년 전에 가장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누추한 곳에서 태어 나셨고 가난한 목수의 생활을 하셨다. 이제 걸치레 신앙과 과소비로 부풀어진 내게 어떠한 모습으로 지금 예수님은 오셨을까? 아마 갓난아기의 모습이 아닌 냄새나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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