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에 다니는 큰애를 우리집에서는「누나」라고 부른다. 자기 남편에게「아빠아빠」하는 것과 맞비교 한다면 문제는 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커다란 덩치로 내 앞에 우뚝선 그애에게서 어른 내음이 물씬거린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영판 어른에 다르지 않다. 가족의 일을 함께 걱정하려 하고, 저 자신의 앞일에 대해 숙고한다. 이제는 한번 끌어안아 주기도 머쓱할 정도로 외향도 못지않게 성숙해졌다. 이름을 부르자니 켕기고, 그렇다고「어르신네 어르신네」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애를「누나」라고 부르게 되었다.
얼마전 남북 고위급회담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상대가 상대인만큼 첨예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아무튼 많은 관계의 발전이 이룩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서로를 부르는 이름의 순서이다. 이쪽에서는 언제나「남북간」이요,저쪽에서는 기필코「북남간」이다. 제3자가 부를때는 번갈아 부르자 해도 할말이 없겠으나 이해 당사자가 부를때는 상대쪽을 먼저 불러준다 해도 흠될 것 하나 없다. 서열을 특히 중시하는 우리 전통의 깊은 뜻이,내 자리를 찾는데 있는게 아니고 남의 자리를 높이는데 있지 않는가!우리 주위에 자주 등장하는「가나다순」「접수순)이 그렇고「고연전」「연고전」이 그렇다.
첫째와 말째의 성서적 교훈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또 아무리 외교상 중대한 의미가 있다하더라도,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 할 때 만큼은「내쪽은 낮추고 상대쪽을 높이는」것이 상식에 속한다. 높은 굽의 구두를 신었다고 다리가 길어진게 아니듯이 먼저 부른다해서 앞선게 아니다. 동양에서는「동서남북」이요서양에서는「북남동서」이니 차라리 다른 표현을 쓰라 권고하고 싶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날을 엊그제 보냈다.그분의 가정에서는 서로를 깊이 연구하지 못한 입장에서 궁금하기 짝이 없다. 속깊이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우리식으로 말해서「형」아니면「이 사람」「여보게나」정도로 예수님을 부르셨을 것이다. 정녕 우리들처럼「얌마!」하셨을리야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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