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경사회의 오랜 습성과 피지배인의 타성이 남아있음인지 큰 것, 많은 것, 높은 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같다.
전답이 넓어야 했고 일꾼은 물론 며느리까지도 힘세고 우람한 체격을 원했으며, 동네 이장까지도 우러러보던 탓인지 지금도 큰집에 고급 승용차가 신분을 뜻한다고 착각하며 대형가구를 선호하고 값비싼 외제 일용품이 불티난다. 길 이름이나 한강의 그 많은 다리 이름에도 대(大)자를 붙여야 직성이 풀리고, 이발소 주인도 사장이며 면도사는 전무이고 구멍가게 주인 명함에도「대표」아무개라고 인쇄하여 돌린다. 얼마나 없이 살고 억눌려 살아왔기에 그러겠는가 하는 측은한 생각마저 들때도 있다.
큰 것, 높은 것은 그리도 좋아하는데 마음은 왜 그리도 옹졸해지고 행실은 날로 급하고 거칠어만 가는가?
대형과 고급을 탐하는 허세는 불어가는데 큰 마음은 잃어만 가고 있어 안타깝다.
참으로 큰 사람은 먼저 자기의 부족함부터 겸손되어 시인하는 사람이요,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고 포용하는 너그러운 사람이 아닐까?
큰 것을 가진 교만 때문에 나라도 이웃도 하찮게 여기며 자기 자랑과 생색내기를 일삼는 자기 오만에 빠져있는 사람이 큰사람일 수는 없다. 자기가 잘나서 높은자리 차지했기에「내눈의 들보 보다 남의 눈의 티」만 보여 섣불리 정의를 앞세우고 고함과 삿대질을 일삼는 사람이 큰 사람은 아니다.
옳을 의(義)자는 내(我)가 먼저 양(羊)처럼 온유해지는 것이다. 따뜻한 이해와 관용과 사랑만이 의를 이루는 큰일을 할수 있다는 뜻이리라. 내가 하는 작은 일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여 하찮은 일에도 불만과 불평이 가득하여 툭하면 짜증내고 신경질을 부려 가족이나 동료에게 상처와 불편을 주는 작은 마음에는 평화가 머물지 않는다. 삶과 일에 대한 즐거움과 신바람이 없어 곧 지치게 되고 실패하게된다.
자기의 모자람은 깨닫지 않고 세상 탓만하는 이면에는 시기의 사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 의욕인이 될 수 없고 일보다 보수를 먼저 따져, 하느님께로부터 받은「탈란트」마저 잃고 말게 될 것이다.
외형적인 큰 것에 집착하기보다 마음을 넓히는데 더 힘써야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의 나라이름에 쓴 큰대자(大)는 국토가 넓은 나라라는 뜻이라기 보다 마음이 큰 백성들이 사는 위대한 나라라는 뜻일게다.
21세기 미래 사회인의 성취목표는 물질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된다. 따라서 가치기준이「소유」에서「존재」로 변화되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돕지 못하는 사람은 뒤쳐진 사람이 된다. 사회의 통념 가치가『경쟁사회에서 지면죽는다』가 아니라『공존사회에서 못 어울리면 외톨이가 된다』로 바뀐다.
많이 가지려는 사람은 원시인이요 얼간이 취급을 받게되고, 내것인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쪼개어 나누고 돕는 사람이 존경받게 된다. 발전된 민주사회에서는 지배자의 개념이 소멸되고 봉사자가 출세하며 하늘의 상을 받게된다.
충청북도 음성땅 두메에서 수많은 행려병자를 돌보며 일생을 바치고 사는 오웅진 신부가 어느 장관의 출세에 비길수 있으며, 인도의 유령지대(幽靈地帶)캘커타에서 피고름 나는 나환자의 상처를 돌보기에 평생을 건 마더 데레사 수녀를 누가 작은 사람이라하겠는가?
마지막 순간 최후의 위로자는 큰 집도 고급차도 보석도 지위도 아니다. 오직 주님의 은총일뿐이다.
어느 재벌이 임종을 맞으며 아들의 손을 잡고『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실패자의 손을 잡고 있구나』하며 길게 탄식하였다. 아들은『아닙니다 아버지! 아버지만큼 재산을 모으고 명성을 떨친 성공자가 어디 있습니까!』하였다.아버지는『아니다. 그 재산과 명성 때문에 친구도 잃고 가정을 돌보지 못했고 진실을 포기했으며 하느님마저 외면하고 아무 쓸모없는 재산만 붙잡고 있었는데 이제 그것마저 놓아 버려야하겠구나』하며 숨을 거두었다한다.
홀로되어 남의 집 파출부를 하면서도 3남매를 지성으로 키우고 틈틈이 이웃노인을 보살피는 우리 본당 수산나씨는 늘 싱글벙글 감사하는 마음으로 레지오 활동을 한다. 바로 이 작은 여인이 재벌이 못 차지한 하늘나라를 얻어낼 성공자요 행복한 큰 사람일 게다.
큰 나무도 잘다란 털뿌리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된다. 큰것보다 작은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충성하자. 작은 정성과 친절과 미소를 나누며 살자.
성당은 큰 것을 달라고 빌러 가는 곳이 아니지 않는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그분의 뜻을 받들고 따라 살기위한 큰 힘을 얻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스승이신 예수님의 큰 마음과 행실을 본받으려 노력하며 살다 보면 먹을 것 입을 것 덮을 것 다 주시겠고, 정말로 큰 행복, 아주 커다란 하늘나라를 송두리째 모두 주실 것이다.
하느님 대전에서, 많이 벌어 듬뿍듬뿍 헌금한 돈의 액수보다 이웃에게 작은 미소라도 지은 회수와 베푼 친절의 회수를 먼저 셈하여야 하고, 분노를 참고 용서한 일과 작은 선행이라도 실천한 사랑의 농도를 먼저 보고드려야 할 것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할 때 감사함이 있다. 큰 것을 쫓는 허영 속에는 감사함이 머무를 수없고 탐욕의 그림자에 가려 행복도 보이지도 않고 채워지지도 않는다. 새해에는 큰 것 비싼 것 높은 것보다 작은 것 싼 것 낮은 것에 관심을 둘수 있는 넓은 마음을 허락하여 주십사하고 간곡히 그리고 오랜시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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