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성자의 강생목적은 죄로 인해 하느님을 등진 인간을 다시 당신 자녀로 삼고자 함에 있다. 태초에 창조 당시 인간에게 주어졌던 초성은혜와 과성은혜를 되찾아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참여시키고자 한 것이 바로 강생구속 육화의 신비이다.
구세주의 강생은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회복을 위한 필연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분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하는 궁극적인 문제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존재의 미와 교회의 존재의미를 통해서 선교의 본질적인 뜻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인류에게 유일한 구세주라면 그가 세운 교회도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유일한 조직일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면 교회의 사명은 곧 그리스도의 사명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염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근본목적이다. 「영원한 생명」의 길은 인간의 존재와 직결되는 본질적인 내용이다. 사과나무의 존재론적 의미는 사과라는 열매를 맺는 것에 있지 맺어도 좋고 맺지 않아도 좋은데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 영원한 생명에로의 구원은 필연적으로 있어야되는 것이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선교의 사명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어떤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다. 선교를 통한 인간구원은 사과나무를 심어서 사과라는 과일을 맺게해야 한다는 지당한 논리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선교의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외쳤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린전9,16~17).
우리교회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이다.그런데 오늘의 우리 교회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의식구조는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말만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도 연구도 없다. 고위성직자들도 수많은 신자들의 대열속에서 큰 착각을 범하고 있다. 수많은 신자들이란 큰 교회행사나 또는 각 본당에 모여드는 군중들을 말한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수많은 신자들이 성직자들 곁에서 교회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그들의 절대수를 생각해야 한다. 국민 1백명중 겨우 여섯뿐이다. 이 수에 만족한다면 우리는 큰 환상속에 빠져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6%의 신자들을 놓고 우리는 하느님 앞에 무슨 말을 할수 있을까? 1백평의 땅을 갈아서 농사짓게 하셨는데 겨우 6평을 갈아놓고 앉아서 만족을 한다면 얼마나 큰 착각을 범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선교의 정신자세를 기다듬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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