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의 장안의 화제는 남북통일에의 꿈과 대통령선거 차비로 쏠리는 양상이다. 민자당이 올해 연말경에 실시될 대통령선거의 후보 결정을 앞두고 계파간의 경합이 불꽃을 튀기고 있고 재벌총수가 새 정당을 만들어 별도의 대통령 후보를 내겠다고 나섰고 전직 대학교수가 이에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전통야당의 총수가 출진을 앞둔 출사표를 준비중에 있으니 이대로 나간다면 대통령후보자는 4~5명의 난립이 예상된다. 민주주의국가에서 법률적 하자가 없는 사람이면 누구나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고 국민들의 심판에 따라 대통령에 취임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좋아 대통령이지 쿠데타대통령이나 체육관대통령이 아닌 공정한 총선에 의한 대통령이란 하늘이 낸 사람이 아니고는 넘볼 수 없는 막중한 자리인 것이다. 건국 이후의 헌정사에서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대통령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었느냐는 사실만 따져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몇 사람의 후보자가 나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중 누가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거쳐 후보자가 되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의사가 결정될 것이다.
대통령후보에 쏠리는 시선 못지않게 뜨거운 것이 남북통일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다. 지난해 연말에 합의된 남북한 합의서에 잇따른 비핵화공동선언은 직어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전쟁의 공포와 남북한의 핵무기경쟁의 부담에서 헤어날 수 있는 획기적인 성과임에 틀림없다. 남북한이 적대관계속에서 서로간에 틈만 보이면 먹히고 만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속에서 우리는 40여년의 긴 세월을 살아왔다. 그 위기의식에서 헤어나기 위해 이민을 떠난 동포들이 적지 않았던 사실만 상기하더라도 남북의 대치상황의 강박관념이 얼마나 절실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최소한 남북간에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안도와 잘만하면 남북이 화해와 공존의 궤도에 접어들어 통일을 추구해나가게 된다는 희망은 우리민족에게는 기적같은 복음이 아닐 수 없다. 또 몇년전까지는 감히 상상할수도 없었던 교류와 협력의 장이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우리 쌀 5천톤이 북한에 들어가고 북한상품이 우리 백화점 진열대에 버젓이 진열되고 있다. 민간차원의 남북교류에 머물지 않고 우리 정부도 사정만 허락하면 정부 레벨의 대북경제협력에 나설것을 공언하고 있는만큼 올해에는 어느 형태로는 남북교류가 더 확대되고 진전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남북화해무드를 타고 국민들간에는 북한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극단적으로 엇갈려있음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제가 상상 이상으로 피폐하여 주민들의 생활이 형편없이 곤궁하다는것은 이번 김일성의 신년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아직도 「이밥과 고기국」이 사회주의의 이상이며 기와집과 비단옷을 입는 것이 국민들의 소망이라면 그런 사회는 수십년전의 전후의 궁핍사회에서 한발짝도 진전을 이룩치 못한 영낙한 사회인 것이다.
이 같은 북한주민의 궁핍한 생활상을 통해 북한은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며 우리 임의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대란 예단이 낙관론의 정체인 것이다. 나진ㆍ선봉지구의 경제특구나 금강산개발도 지원하고 쌀도 더 보내주고 그곳 저임금을 활용하여 우리상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여보겠다는 등의 발상은 지나치게 경제적 실익만을 앞세운 야박한 자세인 것이다.
반대로 비관론은 북한의 궁핍한 경제가 우리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기때문에 그들과의 교류와 협력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북한무용론이다.
독일통일에서 서독의 막강한 경제력으로도 동독의 궁핍을 감당키 어려운 사실이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됨은 명백한 사실이다. 서독에 비해서 우리의 빈약한 경제력으로 동독인구 1천4백만보다 월등히 많은 북한주민 2천만의 궁핍을 구한다는 것은 계산상으로는 불가능한 일면이 있다.
요컨대 낙관론ㆍ비관론은 모두 북한의 경제운용의 실상이 매우 절박하고 주민들의 생활이 곤궁한 것을 전제한 반면에 북한의 2천만 주민들이 우리 형제들이며 언젠가는 함께 살아야할 민족공동체임을 간과한데서 온 형이하학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세기 가까이 그들이 우리의 적으로 존재해왔음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적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일부 집단에 불과하며 이 집단이야말로 우리가 극복하고 타도해야할 적대관계의 대상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복원해야할 것은 우리 마음속에 통일의 불씨를 되살리는 일이다. 우리에게 왜 통일이 필요한가. 그것은 정치적 승리나 경제적 실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수천년간을 함께 살던 우리의 피붙이들이 다시 만나기 위해서이다. 어떤 이유로는 남북이 헤어져사는 것은 역리이며 어렵고 힘들더라도 함께 사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반세기의 장구한 시간을 헤어져살고 적대관계에서 살다보니 그들이 마치 우리의 철천의 원수로 생각되는 것은 하나의 착각이다. 한숨 돌려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2천만 북한주민들은 우리의 형제이며 이웃이며 함께 살아야할 민족공동체의 구성원인 것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마음속에 복원하는 것이 바로 통일의 마음이다. 이 통일의 마음을 새해 벽두에 앞장서 찾는 일을 종교가 맡아해야 한다.
정치가나 경제인들이 펼치는 낙관론ㆍ비관론의 현세적 논리의 허점을 바로잡아줄 사람은 종교인을 제외하고는 우리사회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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