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2일 북한이 신형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했다. 사실 북한의 무력 도발은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 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얼마 전부터 예상됐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북극성 2형’으로 이름 붙은 이번 미사일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도발 의지 자체는 물론, 미사일의 기술적 면도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과거와 다르게 미사일에 액체 대신 고체연료를 장착하고 이동식 발사차량을 이용하는 시도를 했다. 더 은밀하고 빠르게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한마디로 전쟁 가능성을 높인 시도다. 선제공격용인지 보복 또는 억지수단을 목적으로 개발됐는지는 해석이 진행 중이지만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 전체에 심각한 위협수단이 됐다. 김정은 정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제어가 불가능한’ ‘폭주하는’ 정권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해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평화와 대화는 현실성 없는 위험한 목소리로 치부된다. 이상을 깨고 현실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감마저 들 정도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문득 한 북한 출신 지인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그는 객관적 조건으로 본다면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케이스다. 오히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런 그가 아직도 힘든 게 많다면서 “몇 년 전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을 때 사장님이 전화를 하더니 전쟁이 나느냐고 묻더라”는 얘기를 들려줬다. “도대체 북한은 왜 그래?”라는 질문도 별것 아니지만 가끔은 자신이 외부인이라는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수록 북에서 온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아지는 미묘한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증언했다. 그의 한탄을 듣는 순간 아차 싶은 기분이었다. 북한이 소위 사고를 치면 탈북자에게 전화해 ‘한마디’를 청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기에 더 그랬다. 은연 중 탈북자들에게는 더 강하고 자극적인 한마디를 원했던 것도 같다. 이런 작은 행동이 북한 체제를 벗어난 탈북자를 계속해서 북한체제와 다시 묶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참 쉽게 망각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탈북자들의 복잡한 심정도 무시했던 경우가 많았다. ‘목숨 걸고 말한다’며 북한체제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던 한 탈북자가 “그래도 내 고향인데 그리울 때가 있다. 게다가 아직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라고 읊조린 말은 인용한 적이 거의 없듯 말이다. 대학생 시절 언론학 수업에서 ‘듣고 싶은 답만 듣는 것’을 잘못된 인터뷰의 예로 배운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난 탈북자들이 잘못된 인터뷰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고는 100% 확신할 수 없는 것 같다. 최근 북한에서 연일 터지는 사건들로 복잡한 심정이 됐을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