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관한 뉴스는 자극적인 경우가 많다. 북한 주민이 당하는 각종 정신적·신체적 폭력과 기근이 만연한 삶 등은 단골 소재다.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탓에 우스꽝스럽고 기이하게 비쳐질만한 북한 특유의 문화도 자주 뉴스로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탈북 여성에 관한 성(性)적으로 자극적인 뉴스들도 많이 나오는 추세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북한 정권의 무력 도발도 소위 ‘소프트’(Soft)한 뉴스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내용이 자극적이더라도 북한 사회의 진실이라면 뉴스 그 자체는 비판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비판의 화살은 뉴스가 아니라 북한의 잘못된 시스템으로 향하는 게 맞다. 게다가 북한 당국은 과도한 통제로 내외신 언론을 탄압해서 잘못된 정보에 대한 검증을 할 기회조차 막아버렸다. 여기에 미스터리한 국가라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불필요한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뉴스의 보도 행태에 대해선 언론 내부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 12월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펴낸 「신문윤리」는 북한 뉴스의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을 다뤘다. 이에 따르면 미확인된 내용을 보도하거나 익명의 취재원이 남용되는 점 등이 대표적인 북한 뉴스의 문제로 지적됐다. 이어 ‘특종 아니면 오보’라는 말까지 나오는 북한 뉴스의 보도 행태가 결국 언론에 대한 불신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에 더해 북한 뉴스를 접하며 생기는 북한의 국가 이미지도 고민해 볼 문제 같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인터넷 댓글 등을 보면 ‘가난한 데다 무식하고 폭력적인, 그래서 없어져야 할 나라’라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이런 ‘비호감’ 이미지는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분단국이었던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동독 주민에 대한 ‘이등 시민’ 낙인이 사라지지 않아 수년째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주최한 ‘한반도평화나눔포럼’에는 우리처럼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동유럽 국가의 추기경님들과 주교님들이 방문했다. 그중에는 평화를 만들기 위한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분도 있었다. 이후 열린 ‘가톨릭 청년과의 대화’에 참가해 앞서 말한 우리나라 북한 뉴스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에 한 추기경님으로부터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조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북한 뉴스를 어떤 방식으로 생산할지 또는 어떻게 소비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나름의 해답을 내리는 일은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닐까 싶다. 특히 용서와 사랑을 우선순위에 뒀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가톨릭인이라면 더욱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1코린 13,6)라는 성경 구절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