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 따위는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
그렇다. 나 역시 보람보다는 야근 수당을 원하는 직장인이다.
어떤 이에게는 가족이 십자가이고, 어떤 이에게는 질병이 십자가이리라. 나에게는 내가 하는 이 일이 십자가이다.
천직이라 생각되는 일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이 일이 버겁고 두렵다. 매주 집 근처 절두산성지에 가서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마음을 다잡아야 또 일할 수 있는 의지가 생긴다.
■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직장인이 된다는 것, 어떤 의미에서는 사형 선고라 할 수 있다. 자유로움, 게으름, 이기주의에 대한 사형 선고.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
■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무겁다.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는 무겁다. 다른 이의 십자가는 들어보지 않았으니 내 십자가가 제일 무겁다고 느낄 수밖에. 예수님께서 함께 짊어지시기에 그래도 견딜 수 있는 나의 십자가. 주님, 제 십자가에서 당신의 섭리를 깨닫게 하소서.
■ 제3처. 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멋지게 전진하고 싶지만, 실패하고 깨지는 순간이 온다. ‘내 그릇이 이 정도니 그만 하겠어요’ 포기하고 싶다. 실패한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 깨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
■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의 무게만 생각하다 보면, 주변을 소홀히 대하게 된다. 나에게 힘이 되어 주는 가족들보다는 일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잊지 말자.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도 십자가의 길에서 서로의 위로가 되어 주셨다.
■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오늘 나는 내 동료들에게 시몬이 되어 주었는가? 동료의 십자가를 비웃고 침을 뱉는 이방인 또는 재판관은 아니었을까?
■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우리 모두 베로니카의 손수건 같은 위로가 필요한 존재들이다. 위로가 없음에 좌절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주위 동료들에게 손수건만한 위로라도 건네었던가?
■ 제7처.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또 넘어졌다. 또 실수하고 또 실패했다. 두 번째 실패 역시 첫 번째 실패만큼 뼈아프다. 동료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더 면목도 없고 괴롭다. 그렇지만, 다시 일어나야 한다.
■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나는 오늘 동료들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였나? 혹시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내가 제일 힘들다고, 내가 제일 억울하다고 투정만 부리지는 않았는가?
■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도 세 번 넘어지셨다. 평범한 내가 목표한 곳까지 가기 위해 자꾸 넘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나 혼자만 자꾸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참아야 하는 순간, 견뎌야 하는 순간이 계속되는 것. 그것이 직장인의 삶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는 완전무결하셨다. 모욕적이라고? 군중 앞에서 옷 벗김을 당하신 예수님만 하겠는가. 참아야 한다. 견뎌야 한다.
■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때로는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죽을 힘을 다하지 않으면, 결코 영광을 맛볼 수는 없는 것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내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겪는 모든 어려움은 결국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함이다. 이겨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응원하자.
■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모든 것을 다 내주어, 결국은 텅 빈 시신이 되신 예수님. 나도 이렇게 내 일에 내 모든 열정을 다 바치고 싶다.
■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이 고된 일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박수갈채가 아닌 쓸쓸한 무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덤에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소중한 증거였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자신을 바쳐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 나도 내가 하는 이 일이 의미 있는 것이기를 기도한다.
일로써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 감사함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민은정(클로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