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석사과정에 진학할 때의 일이다. 국내에 몇 안 되던 통일·북한학 과정이 설치된 대학원에 지원을 했고, 다행히 복수의 학교에서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어느 학교에 진학할 것인지를 놓고 부모님과 의논했다. 말을 아끼던 어머니는 문득 “북한학이란 이름보다는 통일학이 낫지 않니? 여자이기도 한데…”라는 말을 꺼냈다. 사실 대학원 진학 전부터 내심 부모님이 생소한 학문을 한다는 데 반대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현실로 나타난 기분이었다.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 그런 걱정을 하느냐”는 아버지의 지지로 별 탈 없이 대학원 진학을 할 수 있었다.
정작 대학원 진학 후에는 어머니의 우려가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음을 자주 깨달아야 했다. ‘북한을 배워서 뭐하나’ ‘통일학이란 학과가 있을 수 있냐’ ‘북한을 좋게만 보려는 건 아니냐’라는 질문을 수시로 들었기 때문이다. ‘여성스럽게 생겼는데(?) 무서운 공부를 한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뜨악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해불가’ 한 북한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유지됐던 반공 분위기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는 가능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정치학·법학·사회학·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서 북한에 대한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또 실제로 상당한 학문적 성과를 이뤄놓은 점을 생각하면, 일반인들의 인식은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한 객관적 접근에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데에는 학계 내부의 책임도 있다.
신석호 동아일보 기자는 저서 「분단 저널리즘 뛰어넘기」에서, 평생을 북한만 공부한 학자들이 공개 토론회에서 합리적 토론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진영 논리에서 찾았다. 즉 학자들이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논의를 하기보다 자신이 위치한 보수 또는 진보 진영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에 더 충실하기 때문에, 북한 관련 토론회가 논쟁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상을 돈과 지위를 누리는 학자들의 ‘적대적 공존관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북한·남북관계·통일 문제에 대해 경직된 사고방식을 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정확한 정보 공유를 가로막기도 한다. 한 탈북자 지인은 술 한 잔이 들어가자 “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곳은 한정돼 있다”면서 “어떤 방식으로 얘기를 해야 눈길을 끌지는 눈치가 조금만 있으면 다 안다”는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수십 년째 ‘기이한 나라’라는 북한의 이미지만 소비하는 것은 결코 분단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북한은 3대 세습이라는 고루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적 변화가 분명히 있어 왔다. 북한 주민들의 인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마태 24,42)는 주님의 말처럼 평화를 위해 치열하게 북한을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