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임이동 후 다른일로 늦게 본원에 갔더니 방이 없어 지붕밑 다락방에서 다른 두명의 수녀와 살게 되었다. 입구는 정상이지만 안은 지붕날개가 아래로 경사지는 바람에 허리와 머리를 구부려야한다. 무심코 침대에서 머리를 들다가 천정에 상처가 많다. 창문이라곤 천정에 삼각형 손바닥만한 것이 전부 인데 처음엔 밤낮 불을 켜야하는 이 방이 갑갑해서 어떻게 사나? 하고 답답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붙고나니 이보다 더 좋은 방이 없다. 이 방의 이름을 비둘기방이라 부르면서 세명이 비둘기처럼 모였다 흩어졌다 하고 있다.
가끔 기도가 되지않는날 하는일도 자꾸 막히는 날이있다. 점심후 이를 닦고 방바닥에 풀석 주저앉아 앞을 보는데 컴컴한 방을 둘로 자르듯 햇살이 방가운데를 갈라놓았다. 햇살 속에는 방금 내가 앉으며 일으킨 먼지가 갯수를 헤아릴수 있을 정도로 정확히 보이면서 하루살이처럼 날고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먼지도 제자리 찾아가고 맑은 햇살만 반대편 문에 꽂혀 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마음도 밝아지면서 태양의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오 감미로와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노래가 끝나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던지! 잠시였지만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작은 창을 통해 누리는 행복이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골목바람이 세다든가, 이 작은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맛, 나는 바람을 맞이하면서 통일바람이라 이름지어 놓았다. 어쩌면 금강산과 두만강을 거쳐 내방까지 왔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이 창을 통해 멀리 반짝이는 몇개의 별, 손바닥 크기의 창안에 돌아있는 초롱한 빛이란 가슴이 아리도록 아름다워서 그리운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 달빛은 또 어떤가. 침대에 누워 달빛 흘러온 방안을 보면 절대로 창이 작아 보이지 않는다. 참 여유있는 빛이다. 그 작은 공간도 소홀함없이 골고루 섬세하게 들어와 그 빛을 나누는 달.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유난히 가깝게 들려 제일먼저 비소식을 안다. 여름날 아침 수녀원 모든 새는 이 창앞에 모여와 노래하는듯한 새소리. 이 작은 창문을 통해 이처럼 풍부한 행복이 들어올 줄이야. 가끔은 아직도 급히 일어나다가 아야! 하며 머리를 만져야 하지만 날마다 들어오는 행복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오늘도 열심히 내방을 향한다. 큰 창으론 오히려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체험을 하는 이 작은창, 하느님 저는 날마다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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