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 전에는 몰래 성당 출입을 하는 신세였다. 고통은 신의 섭리이며 구원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우치고 입문했을 때에 소위 쓸데없는 서양귀신 믿는다고 아버지께 혼줄이 난 다음부터 예수님을 가슴에만 모시고 살았다. 식사전 성호경도 마음으로만 그었다. 아버지의 천주교에 대한 인식은 좀 유별나셨다. 불공줄이 세다(?)며 예수를 아예 터부시하였고 유고사상에 젖어 「천주」는 막연히 대우주의 주인이라는 의식에서만 머무셨다. 결코 구원 차원의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던 것이다.
어려움 끝에 성당에서 시몬씨와 혼배성사를 받은후부터 정식으로 예수쟁이 딱지가 우리에게 붙어다녔다. 가슴에 걸린 우리의 십자가는 「주홍글씨」처럼 고충과 영광으로 교차되었던 것이다. 가끔 친정 나들이를 갔을 때 주일이나 축일에는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형제들보다 먼저 아버지의 면전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사위(시몬)는 조심스레 다가가서『아버님, 저희들 성당갈 시간이 라서 이만…』『그래, 예수쟁이들은 먼저 가거라』살아있는 부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천주」라는 것이냐는 뜻이었다. 우리는 긴 침묵속에서 레지오 단원으로서 15년 동안 그저 묵주알을 굴리며 생활속의 작은 희생과 봉사를 바칠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대세를 받겠다고 전화를 주셨다. 아버지는 교육계의 정년퇴직과 함께 허무함과 악화된 지병의 고통에서 무한히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을 영접하게 된것이다. 박도식 신부님의 「무엇하는 사람들인가?」교리 카셋테이프를 들으신후 자연종교와 계시종교를 구분할 줄 아는 눈이 뜨인것이다.
나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께 어울리는 세례명을「바오로」로 정해 드렸다. 기도서를 갖다 버리고 TV에서 사제나 수도자의 출연이 있으면 사정없이 채널을 돌려버리며 핍박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내가슴은 뛰고 입술이 열려 감사와 찬양기도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쁨, 이 환희, 알렐루야!
틈만 있으면 성서를 탐독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호랑이에서 순한 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쓸데없는 서양귀신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구세주라니!
이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아는 것을 실천하느냐에 있다. 언제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하듯이.
부디 여생을 하느님 안에서 살기로 철저히 준비된 속에서 보내기를 기도 드린다.
◆독자투고 환영
그동안 보내주신 독자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본란은 독자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고지 6~7매에 정서하셔서 사진과 함께 보내 주시면 선정 게재하고, 소정의 고료를 보내드립니다. 많은 참여 있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