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한몸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바 있는 교회의 헌안운동이 안구기증자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다.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의 실천운동의 하나로 시작된 헌안운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소식은 그 운동의 정신과 그 운동을 위해 애쓴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할때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것은 헌안이라는 하나의 위대한 행위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과 성체대회라는 계기를 통해 시도된 교회의 나눔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뒤섞인 안타까움이다.
헌안은 뜻 그대로 자신의 눈을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는 행위이다. 물론 안구는 살아있는 사람이 기증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사후에 자신이 눈을 기증하는 것이 헌안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경우이건 헌안은 그 자체로 거룩한 행위임이 분명하다. 사후에라도 자신의 육체 일부를 남을 위해 사용할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아직 자기의 육체를 죽은뒤에라도 훼손하는것을 금기하는 유교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또 본인이 비록 헌안에 서명을 했다 하더라도 가족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더구나 그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것이었다면 헌안을 반대하는 그들의 입장을 탓할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선뜻 내키지 않는 그 행위가 시력을 잃은 실명자들에게 어떤 기쁨과 희망을 줄까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하나의 안구가 오직 한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여러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가톨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헌안운동이 주춤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치 우리의 표피적 신앙을 보는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내적변화와 실천보다는 외형적 행사만을 추구하고 일회적 행동에 머물러 있는 우리신앙의 현주소를 말해주는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헌안운동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우리안에서 부터 찾아나가는 한 방편으로 시도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한번 인지해야만 한다. 헌안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의 작은 몸짓이라는 우리의 다짐을 새로이 해야만 한다.
아울러 우리 실명자들의 시력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외국인 안구를 수입해야하는 현실을 부끄러워 해야만 할것이다. 수입으로 인한 우리의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최대를 기록했다는 이 마당에 안구까지 수입한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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