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오래전 부터 만물의 주인이신 천주께 최고의 흠숭과 찬양을 드리며 섬겨오고 있다. 기도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시여』하는 소리가 얼마나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호칭인지 모르겠다. 나는 기쁘거나 슬플 때 늘 어느 곳에서나 다정하게 이 친근한 이름을 부르곤 한다.
우리는 천주의 근본이 사랑이시고 예수님과 교회는 신랑과 신부사이임을 믿어 알고 있다. 그러므로 신랑이신 그분을 부를때 「주여」혹은 「당신」이라는 그 표현이 얼마나 친근감있고 사모의 정이 드러나며 부드러운 호칭인가? 그런데 기존의 호칭을 사용하여 주님을 섬기는 것이 그렇게 거슬린다니 무언가 석연찮은 감정이 나의 좁은 소견을 두드린다. 주님께서는 이러저러한 호격의 부름보다 겸손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달아드는 자녀들의 사랑을 더 원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환히 들여다 보시는 분이시다. 굳이 「제탓」「저희」「그리스도님」등으로 고쳐 부르자는 용어들이 왠지 억지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지며 어울리지 않는것 같다.
이렇게 별 어색함이나 지나침 없이 우리 마음 깊숙히 심겨진 기본의 용어들을 문법에 맞지 않다고 바꾸어 버린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접어두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기존의 용어속에는 우리들 내심으로부터 친근히 스며나는 주님께 대한 흠숭의 정이 담겨져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주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말의 표현차이로 인해 높고 낮음이 가름될 분이 아니시다. 국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시는 분들에게는 지극히 답답하고 애석할지 모르나 대부분의 교우들이 기존용어에 사랑과 친근함을 갖고 있음을 교회당국이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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