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맏형 엄지에 대하여
엄지는 우리 손가락 형제들의 엄마와 같은 보호자라 할 수 있어요. 주먹을 쥐고 혹 싸울땐-그런 일은 아주 드물지만-제 아랫 네 동생을 보호하느라 바깥에서 안쪽의 우릴 감싸고 나서지요. 그리고는 우리 네 형제가 힘을 모아 상대방에게 정통으로 한방 먹일 순간엔 또 우릴 뒤쪽에서 확실하게 밀어주기도 하는 거예요. 엄지 형이야말로 우리 형제들의 정신적, 육체적 지도자요 후원자요 보호자되는 엄마와 같다는 점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엄지 형, 엄지 엄마, 만세! (우린 설날에 엄지 형에게 세배를 해요. 그땐 엄지 형이 혼자 따로 앉거나 서 있으면, 우리 검지ㆍ중지ㆍ무명지ㆍ약지 동생들이 일제히 나란히 붙어선 뒤 손가락 마딜 두개 다 굽혀 큰 절을 하지 뭐예요)
■ 둘째 검지에 대하여
검지가 누구에겐가 꿀밤을 줄때, 말하자면 누굴 책망하고 타이를 땐, 엄지 형이 거들어 활대 구실을 해주지요. 누굴 야단치고 혼내줄 경우엔 엄지가 맏이로서 직접 나서지 않고 둘째인 검지를 내세우고 도와서 남을 대하고 실력행사(?)까지 하도록 하는 거예요. 검지 형은 본시 성미가 파릇하고 함부로 잘 덤비는 싸움꾼 기질을 타고 나기도 했지만요. 우리 검지형의 꿀밤 맛을 한번 보면 누구든지 정신이 번쩍나고 이마에 혹도 나지요. 그런데 말이예요. 엄지 형이 검지의 행동을 그냥 방치하면 안돼요. 왜냐하면 검지는 제버릇대로 손가락질이란 권총 쏘는 시늉을 자주 하다가 잘못 방아쇠를 당겨 살인(?!)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엄지 맏형의 교육적인 배려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 우리「아래것들」을 엄지를 대신해서 잘 지켜주고 착하게 다스리는 역할이 검지 형 몫이지요. 그러니 검지 형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 셋째 중지에 대하여
중지는 사실로-꽤 알려진 사실이지만-엄지보다 기운이 세지요. 키가 제일 커서 그런가 봐요. 그래도 그는 우리 5형제 중에 자기 자신을 제일 드러내거나 뽐내지 않는 셈이랍니다. 왜 그럴까요. 괜히 젠 체하고 나서길 능사로 하면, 맏형 엄지에게 걱정을 끼치고, 속상하게 할까봐 그럴테지요. 또 제 힘자랑 때문에 맏형이 정신적 피해의식을 갖게되면 큰일이 아니예요. 어쨌든 키가 크고 힘도 센 중지 중간 형의 겸손과 인내를 늘 대견하지만, 그런 여린 마음씨가 때로는 참 불쌍하게도 여겨져요. 보세요. 중지는 사람이 슬퍼 울 때 제 등허리로 눈의 눈물을 가장 먼저 많이 훔치고 닦아 준다는 것을…(불쌍하고 가난한 마음이 다른 이를 또 불쌍히 여겨 잘 도와줄 수 있지 않겠어요. 『하느님 우리 중지 형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또 중지 형이 긍휼히 여기는 이를 도와주셔요. 아멘』)
■ 넷째 무명지에 대해서
한때 이름도 없는 무명인사였다가 혼인예식 때문에 일약 유명해지고 스타덤에 오른 무명지 형은 항시 몸과 마음이 무겁답니다. 무슨 금이니 옥(비치)이니 다이아몬드니 하는 것으로 만든거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사치성 과시욕의 광물성 반지를 늘 끼고 사니까 무명지의 몸이 무거울 수밖에요.
그건 마치 결혼 후에 아기를 가져 몸이 무거워지는 것과 같다고 할런지요. 아니면 오늘날 가정주부들의 어렵고 지친 삶의 무게 같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막내인 저와 가장 친하고 제가 젤 좋아하는 무명지 형이 중지형 못지않게 여간 불쌍한게 아니예요. (유명하다는 건 오히려 괴로운 짐일 뿐더러, 그만큼 책임감 있는 고뇌 고통을 안거나 지고 사는 거지요. 그런걸「유명세」라나요 유명한 건 불쌍한 거예요.
『주여 모든 유명인을, 명예 누리는 이를 불쌍히 여기소서』)
■ 막내 약지가 인사드려요.
약지인 저는 잠잘 때도 제일 먼저 눈을 감지요. 우리 형제들의 막내둥이로서 가장 작고 어리기에 제일 먼저 자고 많이 자야 하는 것이예요. 『새끼 손가락아, 오늘밤도 잘 자렴』이라면서 바로 윗형인 무명지가 자기 몸을 이불이양 저에게 가만히 덮어주곤 한답니다. 아아! 저는 정말 행복해요. 저는 나이도 적고 몸도 작어서 엄지 맏형에게 동생이라기 보다 어쩌면 아들과도 같아요. 엄지형은 물론, 그 맏형을 존경하고 따르는 둘째 검지, 셋째 중지, 넷째 무명지 형들 모두가 저를 아주 귀여워하고 늘 돌봐주니, 저는 행복한 아이랍니다. 저는 우리 형들의 사랑과 돌봄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손가락 형제」이야길 서툴게나마 해본거예요. 여러분! 새해에 복많이 받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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