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다 아름답다. 비록 어떤 것은 겉보기에 좀 추해 보일지라도 그 존재 자체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존재가 아름답다고 해서 무엇이나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엔 참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많다.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추함인지 봄날을 맞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이야 비할 것이 없다. 요즘처럼 해토하는 봄날에 아지랑이라도 피어오르면 새싹이라도 돋으면 그것은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다. 무엇이나 생명은 다 아름답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부러운 아름다움일 것이다. 하지만 개발 목적으로 자연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거나 그것을 방치하는 이들에게 같은 말을 할 순 없다. 꽃을 가지 채 꺾어 보란 듯이 배낭에 꽂고 다니는 이들이나, 비록 야산이지만 트랜지스터 볼륨을 높여서 뽕짝과 함께 오르내리는 이들은 아름답기는커녕 민망하고 추해 보인다.
무릇 인간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올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상은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비교하길 좋아하지만, 누구나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얼짱 몸짱에 기댈 것이 아닌 존재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기를 바라고 아름답게 살고 싶어 하지만, 겉모양에 집착하기보다 마음을 아름답게 하고 삶을 아름답게 꾸밀 일이다.
인간의 삶은 아름답지만,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아름답기도 추해 보이기도 한다. 삶의 방식에 따라서 존재의 아름다움이 돋보이기도 무색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모습들이 뒤엉켜 있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이 아닐까. 수많은 아름다움 중에 청춘과 사랑처럼 강렬한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요즘 들어 흙수저가 금수저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포기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애써 칭찬하고 싶다. 꿈을 지닌 것은 무엇이나 아름답다. 꿈이 없는 것처럼 황폐하고 쓸쓸하여 추해 보이는 것도 없을 것이다. 헬조선의 아수라장 속에서 탈조선을 꿈꾸는 이들은 그래서 아름답기만 하다.
만남과 헤어짐에도 미추가 있다.
모 시인의 말처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쩌다 결별을 아쉬워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이별의 때를 끝내 참지 못하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은 좀 추해 보인다. 고단한 삶 속에서 약한 이들을 도우며 사는 사람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없지만, 도와야 할 때를 알고도 손 놓고 떠나는 사람은 야속하다 못해 추해 보인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근본적인 아름다움에 속한다. 이뿐일까. 의견을 교환하고 뜻을 모을 때 열심히 설득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괴성을 지르며 강요하는 억지논리는 추하고 추하다. 아무리 좋은 것도 강요 앞에서는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법이다. 누가 감히 강요할 수 있으며, 누구를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사소한 것이라도 상대방을 위한 양보는 넘치는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의 세태에도 미와 추가 있는 것 같다. 외교 아닌 시위현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한 것을 두고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태극기만으로 부족해 원 플러스 원 한 것 같아 입맛이 쓴 것은 나뿐일까. 과유불급이 요즘의 세태에도 딱 들어맞는 미추의 기준일 것이다. 삶의 미추는 종교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기의 믿음에 성실한 자세야 고매하고 아름답다고 하겠지만, 그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엇이건 신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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