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에 따른 국론 분열을 국민 모두가 걱정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국민 화해와 일치를 위한 신앙인들의 역할을 당부하고 있다. 대선 후보자들도 국정운영의 첫 번째 과제를 국민 통합으로 꼽고 있다. 그만큼 국론 분열의 해소는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다. 화해와 일치는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질 때 가능하다. 서로 다른 의견과 입장이 타당성이 있고 인정할 만하다고 생각될 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국론 분열은 국정의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자세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탄핵 결정을 이끌어낸 국민 대다수의 여론은 적대시하고 국정 농단 혐의를 부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회상황을 살펴볼 때 화해와 일치를 향한 여정이 쉽지 않음을 예견할 수 있다. 정치지도자들은 정권 쟁취에 혈안이 돼 이렇다 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지도자들도 우리 사회에 잠재된 근본적인 사회악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정농단의 사태는 공적인 정치행위의 범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최고통치자의 사사로운 결정과 이를 실행하기 위해 맹종하는 보좌관과 정치인 그리고 기업가의 유착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정치의 최종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와 복지증진은 철저히 배제됐다. 실정의 결과는 사회 곳곳에서 이미 나타났고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나, 당사자들은 그 원인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법이 최종적으로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지만, 사회 통합에 대한 과제는 국민 모두에게 고스란히 남겨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사회 통합을 위한 내재적 작업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성찰할 일은 그러한 실정의 책임에서 나는 과연 예외일 수 있는가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생각 없이 살 때 악은 평범하게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우리는 쉽게 권위에 굴복하고 자신의 지위를 안정화하려고 한다. 또한 우리의 바쁜 일상은 생각조차 하나의 일로 받아들이게 하여 시류나 대세를 좇아가는 데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대세가 파국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사태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실로 생각 없는 선택은 결코 우리를 안정하게 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우리 모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성찰할 일은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이다. 정치적 행위는 사유에서 비롯되며 사유방식은 관습과 사회적 경험 안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한 개인의 사회적 행위를 단순히 개인적인 결단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의 사회적 행위는 신념과 가치가 함의된 인격적 표현이다. 비인격적 표현조차 때로는 소통에 대한 간절한 절규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적인 상호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열린 논의뿐만이 아니라 정서를 함께하는 길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선택이 갖는 한계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이론체계나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잠정적인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입장이 절대적이지 않을 때 우리는 관용의 자세를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한 전제는 우리에게 올바른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서로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성찰할 일은 우리가 서로 용서할 수 있는 가이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결핍을 용서할 수 있을 때 남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다. 남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용서하는 사람은 먼저 용서하고 그 용서하는 마음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다린다. 용서란 본래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서란 이웃 사랑의 실제적 표현이며 일치를 위한 완전한 도구이다.
용서와 사랑은 화해와 일치를 실현하기 위한 유일하며 순수한 내적인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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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만(베드로) 가톨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