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세상은 분열과 통합에 의한 관계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세계사를 봐도 욕망에 의한 이합집산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하나 된 인간들은 다시 헤어짐을 꿈꾸었고 갈라선 후엔 필요에 따라 또 재결합을 추구했다.
나누어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분열은 나누어진 객체들이 서로 간의 이해와 교류 없이 단절돼 적대성을 유지하는 상태를 뜻한다. 대표적 예가 정신분열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분화(differentiation)는 나누어지더라도 교감과 소통을 유지하며 다양해진다는 발전적 의미를 지닌다. 연인도 헤어지면 마음은 아프지만 더 나은 존재로 성숙해지는 경우가 있다.
단세포로 만난 정자와 난자도 분화를 통해 조화로운 한 인간이 된다. 가톨릭에서 동방정교, 루터교, 성공회가 분리됐고 또한 루터교도 수많은 개신교 종파들로 갈라서면서 그리스도교는 거듭날 수 있었다. 분화되지 못했더라면 아직도 면벌부(대사부(大赦符)의 오역)를 팔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분화는 그렇게 궁극적으로 더 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정치인들은 더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 ‘국론이 분열됐다’라고 생떼를 쓴다. 하지만 대의를 이루기 위한 방법론은 여럿이어야 한다. 그래야 토론거리도 생기고 큰 뜻을 이루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존중하는 성숙함도 얻게 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넌 나쁜 인간이야”라며 폭력을 휘두르면 세상은 파괴된다. 오로지 다름이 있어야 위상차가 생기고 그로 인해 세상에 질서 있는 흐름이 생기는 것이다.
분열과 분화는 이처럼 다른 것이다. 분열은 파괴지만 분화는 발전이다. 여럿이서 식당에 가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김치찌개로 통일하자”고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하지만 이것은 통일이 아니고 권위에 의한 획일이다. 한 가지를 표명하는 획일과 통일! 의미는 분명히 다르다. 획일은 하나의 소리, 균일화된 색상, 한 가지 단어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예술로 상승할 수 없다. 반면 통일은 ‘다양성의 공존’을 뜻한다. 음의 차이, 색의 차이, 단어의 차이에 의해 질료들은 비로소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 수많은 종류의 세포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듯이, 온 세상은 다른 것들의 조화로운 공명으로 이뤄진다.
통일은 구동존이(求同存異)와 화이부동(和而不同)한 세계상을 추구하는 역사 과정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대의를 추구하기 위해 차이를 존중하는 세상이 통일이다. 흡수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것을 통일이라 할 수 없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화해를 통한 평화체제의 구축이다. 두 개의 국가로 살아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처럼 나뉘어 살더라도 게르만족의 정체성만 간직한다면 그 모습이 진정 통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민족의 화해는 분열에서 분화로, 획일에서 통일에로의 경이로운 역사적 전환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