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서울에 일보러 갈 때 평소 도움을 받는 몇 분에게 선물을 드려야겠다 싶어 우리 수녀원 된장과 막장을 준비했다. 우리 수녀원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된장이기에, 수녀원 입회서부터 지금까지 매일 먹어도 매일 더 맛나는 된장이다.
우리가 메주를 팔고 된장을 판다고 해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전국에서 우리 수녀원 메주와 된장을 구입하러 오는데는 그만한 맛이 있기 때문이므로, 우리 식생활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메주집 수녀가 된것에 나는 긍지를 갖고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했다.
그런데 수녀님 한분이 동행한다는데 힘을 얻은 내가 욕심을 너무 부렸다. 대구서 서울까지 한통만 들고가도 힘이 드는데 4통을 준비했으니 거기다 숙식할 내 소지품까지 들고는 이미 대구역 홈까지 가는데 팔힘이 다 빠졌다. 기차안에서 두번씩 포개얹어 비닐로 싸고 보자기로 쌌다고 안심했는데 한참가다 냄새에 선반을 보내 벌써 국물이 보자기에 비치고 있다. 우리야 성당에 앉아 있어도 식사때면 올라오는 냄새라 익숙해져 있지만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신사 숙녀 머리위에 얹어둔 된장이라 움직일수록 냄새만 더 나니 모른척 가만 두었다.
서울 분원에 와서 다시 비닐을 깔고 보자기를 씻어 싸고 단정하게 해서 갖다 드릴 집으로 가는데 전철을 타고 조금있으니 또 냄새가 났다. 여름이라 온도가 높아 된장이 끓어 넘친 것이다. 발아래 두고 조마 조마하고 있는데 조금후 내옆에 젊은 어머니가 5살정도의 사내 아이를 데리고 앉았다. 앉자말자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아들의 양손을 펴서 앞뒤로 검사하고 냄새를 맡고 급기야 머리에서 발끝까지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애매하게 그 어린이가 당하고 섰는데도 나는 그녀에게 『제 된장 냄새 입니다』라는 말을 못했다. 그녀의 얼굴이 냄새에 질린 모습이라 감히 꺼낼 용기가 없었다.
다음역에서 우리가 내렸으니 망정이지. 목적지에 가기 전에 불란서 대사관에 갈일이 또 남았다. 팔에 드니 흔들려 더 새는 것 같아 가슴에 된장을 안고갔다. 대사관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이것 좀 맡기고 다녀올께요』했더니 보따리가 수상한듯 경직된 목소리로『그게 뭐요?』했다. 『된장입니다』하니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렇게해서 드디어 된장이 갈 집까지 갔다.
아무힘도 안들이고 갖고온 것처럼 드리고 왔는데 지난 성탄때 그분에게서 카드가 왔다. 『입맛이 없을때는 맑은물에 수녀원 된장을 한술 떠서 된장을 끓여 먹으면 더없이 좋다』는. 된장 선물의 보람을 또 한번 느끼는 카드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