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많은 역사서 가운데 사마천이 쓴 사기를 보면, 지조를 지키기 위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결국은 굶어죽은 백성의 가슴아픈 얘기가 실려있다고 하는데, 대충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주나라의 무왕이 인접 국가의 난폭한 은나라 왕을 정벌해 버리자, 천하는 모두 주나라를 섬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은나라의 백성이었던 백이와 숙제는 이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은나라 백성으로서 의리로 보와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해서,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먹다가 결국 주려 죽었다는 얘기다.
이 얘기를 근거로 해서 후세사람들은 백이 숙제의 굳은 절개를 일컬어 「만고청풍」이라 칭송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역사를 더듬어보면 백이ㆍ숙제보다 더 굳은 절개의 충신들이 있었으니, 조선시대 초기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해서 선죽교를 선혈로 물들이며 숨진 고려충신 정몽주가 있고, 단종애사의 사육신 성삼문이 더더욱 절개에 빛나는 어른들이 아닌가.
청사에 기리 빛나는 두 분은「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의 단심가와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의 금쪽같은 시조를 후세에 남겼다.
특히 성삼문의 시조는 중국인들이 만고청풍으로 칭송하는 백이ㆍ숙제를 비웃는 내용을 담고있어 대쪽보다 더 곧은 절개를 은연중 나타내고 있어서 후손인 우리들의 머리를 저절로 숙이게 한다.
-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도하는것가 비록에 푸새엣 것인들 그 뉘 땅에 났더니?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해서 수양산에 숨어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은 백이숙제를 보고 고사리인들 그것이 주나라땅에서 난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했으니, 지하에 묻힌 이제의 무덤이 부끄러워 땀을 흘릴만도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요즘들어 역사속의 우리 선조들의 올곧은 정신이 한결 그리워지며 왜 못난 후손들은 지조도 절개도 없이 버러지처럼 탈바꿈도 잘하고 카멜레온처럼 시도때도 없이 변신을 잘 하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새해 접어들면서 14대 총선의 열기가 서서히 일면서 최근엔 전국이 총선화제로 뜨거워지고 곧 미친 불길이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기조선량들과 정치지망생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며 윗사람 눈치보기, 줄잡기로 동분서주 했던 1막 1장이 끝나자, 턱걸이에서 밀려난 인사들은 송사리 떼처럼 당장 돌아서서 오직 공천만이 살길이란 듯, 정당이나 정강도 아랑곳 없이 허겁지겁 이집 저집 문전을 기웃거리며 아양을 더는 2막도 점입가경이다.
TV 인기드라마 제목을 흉내내서, 정녕 「국회의원이 무엇이길래」?
엊그제는 「각하! 지당하옵십니다」하면서 무릎 꿇고 충성을 외처던 인사들이 각하가 실권을 하자 하루아침에 독재자로 몰아붙치며 오로지 자신만이 유일하게 독재와 싸워온 민주애국지사노라 흰소리를 치는가 하면, 어제는 군사문화를 척결해야 한다고 목메어 외치던 인사가 어느날 갑자기 그 군사문화 속에 동화되어 평생동국을 외치고, 어제의 동지를 원수로 치부해 버리고, 어제 몸담았던 집을 헌신짝 버리듯 박차가 나와서 남의 집 추녀밑에 빌붙어 갖은 아양을 떨고 있는 저 무리, 무리를?
저들에게 신의를 따지고 지조를 들먹인다면 어느집 개가 짖느냐고 할것이다.
무릇 선량이 되어 정치를 해보겠다는 알량한 일편단심으로 동분서주 하는게 이 무리들 뿐이랴.
말 못하는 짐승도 베풀어준 은혜는 저버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람이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사람으로부터 크나큰 도움을 받았다거나 어떤 약속을 했다면서 결코 그 은혜를 잊어버리거나 그 믿음을 없앨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주변에는 개구리 올챙이적 일을 잊어버린채 어느날 갑자기 졸부가 되었거나 고관이 되고난 후엔 하늘에서 저절로 생겨난듯 안하무인이 되어 온갖 전횡을 일삼는 족속들도 그 얼마나 많은가.
굽히지 않는 지조와 변하지 않는 절개, 잊지않는 신조와 꼭지키는 약조-우리시대에는 진정 이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다 먹고살려다보니 제뜻과는 달리 언행을 해야했고 속으로는 피를 토하면서도 웃음을 팔고 아양을 떨어야 했을 것이다. 꼭 지켜야할 약속인줄 알고도 주위의 눈이 무섭다거나 자신의 안일이 지켜지는데 위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언제부턴가 자신도 모르게 비정상화로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른다. 누구를 지목하고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잃어버린 지조와 절개, 시의를 되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동가식서가숙 했던 정신을 바로 들여앉히고, 남발했던 약속과 식언의 고질병을 스스로 치유시키자.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서양속담을 생각하면서 지금부터 일대 혁명을 일으키자. 그리하여 보다 맑은 몸과 마음의 눈을 크게 뜨자.
이제 바야흐로 총선의 무대가 절정에 이르게 되어 주인공이 죽든지 살든지 최후의 종장은 끝나고 막이 내려진다.
맑은 혜안으로 선택하고 기립박수를 보낼수 있는 선량을 뽑자. 다시는 전철을 밟지않는 슬기를 발휘하자. 올곧은 정의를 앞세워 일어버린 참지조와 신의를 되살려서 우리모두가 믿고사는 세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오늘의 백이숙제, 성삼문은 반드시 우리 속에서 되살아 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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