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1년쯤 뒤에 난 아기를 가졌다. 아이의 잉태로 나에게 다가오던 삶의 희열은 어느 어머니 보다 더 컸으리라. 아이가 들어서자 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동원하니 시작했다. 고전음악을 듣고, 이 책 저 책을 뒤적여 잊어버렸던 앎을 다시 깨우치고, 좋은 생각과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글을 읽는 등,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다 좀더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더운 여름에도 아랑곳없이 방송통신대 강의까지도 수강했다. 그 목적은 물론 총명한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파악 하기도 힘든 심리학용어며, 해석하기도 어려운 영어공부에 이르기까지, 태어날 내 아기를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꽃도 채 피기전에 벌써 열매 딸 생각부터 하는 꼴 이었으니 하느님 보시기에 좋지 못한 모습 이었으리라.
시간이 지나고 달이 차서 난 여느 산모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았다. 난 태어난 생명에 대한 기쁨으로 아이의 미래에 대한 즐거운 설계를 하며 병원생활을 하다, 3일후에 퇴원하였다. 그런데 퇴원하는 나의 가슴에 아기는 안겨져 있지 않았다. 황달이 심하여 며칠간 입원시켜야 겠다는 병원측의 통고가 있었고, 난 하는 수 없이 아기를 두고 퇴원 할 수 밖에 없었다.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에 기거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으로 편치못한 시간을 세며 아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병원에선 연락이 없었고, 혼자만의 망상으로 한없이 불안하던 난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강ⅹx아기 황달치료가 아직 끝나지 않았나요?』
『네, 애기 어머니세요?』
『네』
『저어, 애기에게 다른 질병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치유가 좀 늦어지는데요, 애기 어머니나 아빠께서 병원에 오셔서 상의를 했으면 좋겠는데요』
『뭐라구요? 우리 아기에게 다른 질병이 있다니요? 무슨 병 인데요?』
『저?,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심장이 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네? 시, 심장이??』
난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심장병! 내 아기가 심장병이라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그럼, 그 불쌍한 것이 곧 죽기라도 한단 말인가? 어쩌서 내 아기가 그런 불행한 일을 당해야 하나?』
횡설수설 숱한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총명한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자신만심으로 가득찾던 내게, 하느님께선 축복으로 아기를 주신게 아니라,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고통까지를 듬뿍 얹어 주셨던 것이다. 그 긴 분만의 고통 중에도 난 오직 총명한 아이의 탄생을 생각하며 기쁜 맘으로 아픔을 견뎌내었는데 정작 태어난 아이는 더 큰 아픔을 견뎌내었는데 정작 태어난 아이는 더 큰 아픔을 가진 선천성 심장병아이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이 나를 겹겹이 에워쌋고, 세상은 자신만만하던 나를 한없이 비웃고 있었다. 새 생명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심을 난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