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하늘에 오르시기 앞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파견의 말씀(마태28,19~20 : 16,15)을 신자들은 미사가 끝날때마다 사제로부터「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로 듣게 된다. 복음 전파(선교)란 주께서 신자들에게 내린 지상 명령이고, 사도 바오로가 내린 엄숙한 명령(2디모4,2)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사도1,8)으로서 복음 전파자로 뽑힘을 받은 이(마르3,14~15)로서 선교(복음전파)를 통하여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1데살2,4)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려고(요한15,8)애썼는가를, 교회로부터 세상으로 파견을 받을 때마다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 파견된 이로서 그 준비를 철저히 했는가를 자성해 보아야 한다.
한국 초대교회에 믿음의 선조들은 16세기께부터 중국으로부터 서학서를 들여와 연구하고, 천주학을 사악한 학문이라고 배척하고 박해하던 여러 악조건속에서 복음전파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문서선교」를 개발해 교회창설 10년만인 1794년에 신자수가 4천여명이 되었고, 1795년 조선에 입국한 최초의 외국인 성직자인 주문모 신부도 선교사없이 스스로 배워 온 신자들의 교리지식이 무지에 가까움을 절감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사목활동의 중점을「문서선교」에 두었고 그것은 한국교회의 한 전통이 되었다.
신유박해(1801년)때 평범한 신도들의 집에서 압수해관에서 불태워버린 교회서적이 1백20종이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의 종교서적의 보급이 상당했음을 알수있고, 박해로 교리서를 펴낸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을 잃었을때 최모루수는 여러 교우들에게 교리서를 나눠주어 교세를 1794년 이전의 상태로 만들었다는 기록에서 문서선교의 효과를 잘알수 있다. 1816년 순교한 김계원은 교리서를 교우나 미신자에게 나눠주어 많은 입교자를 내었고, 김세박과 이경언은 교리서적을 베껴팔아 생계를 꾸릴정도로 책이 잘팔려, 당시의 성직자와 교회지도자를 대신하여 문서선교가 복음전파에 아주 큰 구실을 하였음을 알수있다. 한편 많은 교리서를 베껴 교우들에게 나눠주어 각도에 알려졌던 신태보는 정해박해(1827년)때 전주 포졸들에게 잡혔을때, 그가 베꼈던 책들의 출처를 『신유년에 순교한 교우집을 헐적에 벽 속에서 나왔다』라고 한 말에서, 순교를 예견하고 교회서적들을 보존해 전하려 했던 순교자들의 거룩한 모습을 그려볼 수가 있다. 이렇듯 초대교회 때부터의 한국 가톨릭의 전통적인 복음전파의 한 방법은 문서선교였으나 오늘날은 어떠한가? 직접선교와 함께 이뤄지는 예비선교(간접선교)인 자선사업, 의료사업, 교육사업들은 대체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보여지나 「문서선교」의 상태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한편, 세상에 준비없이 잘 되는 일은 없다. 우리는 사람낚는 어부로서, 마귀의 세속과 싸우는 군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전파를 통한 구령사업을 하기에 앞서 선교에 활용할 만한 성서 실력을 쌓으려고 날마다 성서를 읽으며 준비를 잘 하고 있는가의 물음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신자는 몇이나 될까?「한국 가톨릭 신자들은 성서를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은 신자들 스스로가 인정하는 말이 되었고, 갈려나간 형제들이 우리를 손가락질할 때 자주 쓰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성서와 교리 공부는 소홀히 하고 시계추처럼 교회에 기계적으로 다닌다 하여 신자들 사이엔 「발바닥 신자」라는 말이 생기기도 하였다.
요즈음 주일미사 때마다 가톨릭 신문사에서 중류층 신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본당들을 찾아가 하루종일 구독자 신청을 받아 보지만 신청자는 1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몇해전에 창간한 한 개신교의 일간신문은 수십만부를 찍어 그 교회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앞다투어 구독하고 그 보급 또한 신자들이 맡고 있다는 말을 듣곤 문서선교적인 측면에서도 저들과 경쟁이 안되니 1백년이나 앞서 교회를 세웠어도 교세는 거꾸로 될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어떤 소설가가 순교자전을 썼다가 집만 한채 날리고 시골로 가버린 일이며, 심혈을 기울여 「성서주해서」를 펴냈다가 문닫을 지경이 되었다는 어떤 출판사의 이야기며, 교회의 출판사들마다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교회책 안읽는 전통(?)을 세우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이며, 본당의 미사해설자가「주보」라도 읽어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될 때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복음전파의 지상명령을 수행할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앞선다.
다행히도 불과 몇종에 지나지 않던 교회 정기간행물이나 출판물들이 교구나 수도원 중심의 발행양상에서 벗어나, 최근에 평신도들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간행물들이 창간 붐을 이루면서 여러가지 읽을 거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회출판에 종사하는 이들은 문서선교의 사명감을 더욱 가지고 바보상자나 세속의 쾌락에 빼앗겨 버린 독자들이 되돌아오도록 다양하고 질 높은 읽을 거리를 제공하면서 적극적으로 독자 확보에 나서야한다.
신자들은 문서선교이 첨병으로서 초대교회때 말씀이 담긴 책을 너도나도 베껴보던 열성을 되찾아 성서를 비롯한 교회출판물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하고 『두 주일엑 한번씩 짐꾼들이 서울에 올라와서 교리문답과 기도서를 짊어지고 돌아가서 며칠만에 재고가 바닥이 나곤했다』(1894년 서울교구 연보)는 말처럼 교회출판사들이 신바람이 나도록 뒤밀어 주어야 한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물질만능주의 속에 더욱 가득 찰 무신론과 싸워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12억 중국 대륙을 비롯한 아시아와 소련들을 향한 복음전파자로서 부름을 받은 한국 가톨릭 교회는 초대교회때 부터의 전통을 이어받아 문서선교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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