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 중 하나가 운동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근육이 그 운동의 메커니즘을 기억하는 것이라 한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그 운동에 쓰이는 근육이 기억하지 못하면 운동을 할 수 없다. 근육이 운동의 메커니즘을 기억하는 방법은 반복 연습이다. 행동으로 수차례 동일한 동작을 반복해 연습할 때 몸의 근육은 그 운동을 기억하게 된다. 기억으로 행동하게 만들고 동시에 기억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마치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 하신 예수를 기억하기 위해 매 미사를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기억하고 행동한다면 단순히 추억을 되씹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지금 여기서 만나는 현실이 된다. 나아가 기억하고 행동하는 근거가 사랑이라면 대치할 수 없는 막중한 당위성을 지니게 된다. 사랑은 속성상 역동적인 힘으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든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한다면 쉼 없이 그 사람을 위해 움직이게 된다.
즉,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뿐인 사랑이다. 기억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랑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해서 예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기억하기 위한 행동으로 변화를 일구어내지 못하면 기억은 결국 희미해진다. 아무리 기억하고 행동해도 변하는 것이 없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지쳐 포기하는 순간, 기억도 행동도 사랑도 힘을 잃는다.
기억하는 것이 행동으로 옮겨져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었다. 어떤 행동을 해도 바뀌지 않는 세상과 맞닥뜨리면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처럼 여겨지는 행동과 기억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기도가 필요한 이유다. 기억하고 행동하는 일이 인간적 한계에 도달해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 기도는 힘을 준다. 지치지 않는 용기를 주고, 변하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기도다. 기도 안에서 행동하며 기억한다면 마침내 하느님은 고통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귀여겨 들어주실 것을 믿고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기억하는가에 따라서 살아가는 행동의 내용도 달라지겠지만, 근대 한국사에서 4월은 여러 가지 아픈 사건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중 하나가 3년 전 4월 16일, 국가의 총체적인 무능과 부실, 이윤만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의 탐욕을 만천하에 드러낸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이다. 참혹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외치고, 생명의 거룩함과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거리에서 단식하고 미사 하며 행동해야 했다. 지치지 않기 위해 기도하며 기억한 행동은 진도 앞바다에 수장된 세월호를 1073일 만에 인양되는 광경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치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의 인양을 막고 있었던 것처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로 대통령직 파면과 동시에 바닷속 세월호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틀 만에 인양되어 미수습자들이 가족들에게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혹과 진실을 밝히고 재발방지를 위해 행동하며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기도한 연대는 작은 변화를 이루어냈다. 작은 희망이 어두운 세상의 변화를 일구어 낼 수 있도록 지난 3년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기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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