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평양의대 현대화 지원사업차 북한에 갔다. 존경했던 고(故) 김승훈 신부님의 고향이 진남포라서 궁금했던 차에, 북측 민화협 참사에게 ‘진남포는 남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냐?’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참사는 한심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일본인들이 조선을 강점할 당시 남포를 진압한다는 뜻으로 남포를 강제개명한 것’이란다. 그리곤 ‘남측에선 역사시간에 그런 것 안 배우고 도대체 뭘 배우냐?’라며 가벼운 핀잔까지 받았다.
속으로 많이 부끄러웠다. 한 번도 근대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나는 ‘봉이 김선달이 어떻게 한겨울에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거냐?’라는 농담조의 질문을 던졌고, 곧 화기애애함은 회복됐다. 내가 진남포에 애련한 감정이 있었던 또 다른 까닭은 안중근(토마스) 선생님께서 겨레의 부흥을 위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우셨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부실한 교육 탓에 북한에는 남포와 진남포라는 두 도시가 있음으로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후 머릿속에서 잔혹한 식민주의의 잔재인 진남포를 삭제했다. 그리곤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람들에게 ‘진남포는 일제가 만든 잘못된 이름이다. 모든 공식적 표기를 진남포에서 남포로 바꿔야 한다’라고 수차례 진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변화를 싫어하는 수구적 타성 때문이다. 심지어 ‘이름을 원래대로 바꿔주면 북한에만 이로운 것’이고 ‘북을 이롭게 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기막힌 주장을 하는 분도 계셨다.
민족화해는 남과 북 서로를 위해서 하는 것일진대, 도대체 다른 누구를 위해야 한다는 말인가? 통일을 염원하는 청년의 뜨거운 피가 혈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나에게는 힘이 없었고 결국 없던 일이 돼버렸다. 2년 전부터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선 ‘내 마음의 북녘본당 갖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는 당연히 남포본당을 마음의 본당으로 정하고 싶지만 북녘 본당 지도엔 아쉽게도 아직 남포본당은 없다.
우리가 남북으로 갈라서게 된 원인은 일제지배였다. 따라서 화해하려면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일제잔재부터 청산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학자들이 식민지근대화론을 핵심으로 하는 식민사관을 추종하고 있으며, 식민권력을 얻은 이들의 후손들이 계속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고착화된 식민잔재를 해체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안다. 하지만 우리 겨레의 도시 이름 하나 원래대로 바꾸는 것이 그리 불가능한 일이랴?
만주 땅 어딘가 안중근 선생님의 고귀한 유해는 일제가 숨겨놓아 아직 찾지도 못하고 있다. 남북이 마음을 모아 그분을 고국으로 모시는 것이 민족화해의 단초일진대, 그 일이 어렵다면 진남포라도 남포라고 빨리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등박문 사살로 천주교에서 파문당하신 안중근 선생님을 복권하는 데 김승훈 신부님은 앞장서셨다. 이제 하늘에 계신 그분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 화해와 일치의 작은 시작이다. 진남포는 이제 없다.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