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병원에 다녀온 남편은 애써 충혈된 눈을 외면하며, 정확한 진단을 위해 병원에서 지정한 ⅹⅹ의과 대학에 아이의 피를 갖고 내일 대구에 갈것이라는 말만을 했다. 그리고 확실한 결과가 없으니 미리 너무 슬퍼하지 말자면서 나를 위로 하였다.
남편이 아이의 피를 갖고 대학병원에 다녀 온지도 며칠이 지나서야 불쌍한 아기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아이를 받아 안으며 미어지던 가슴엔 형언 할 수 없는 어머니로서의 죄책감이 아픈 생채기를 내었다. 그것이 내가 감당 해야 할 하느님께서 주신 깨우침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난 깨닫는다.
아기는 꽤 중한 심장병으로 숨 쉬는것, 우유 먹는것을 무척 힘들어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난 처음으로 내가 살아 온 삶을 뒤돌아 보고, 거짓없이 참회하며, 그동안 지은 죄를 하나하나 깨우쳤다. 그리고 그때서야 난 교회 다니는 친구를 찾아 내 아기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하였다. 나 자신이 얼마나 철면피 인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할 때에 그 친구 교회 다님을 내심 달가와 하지 않아 놓고서, 이제 말 할 수없는 절망감으로 허덕일때야 그 친구를 붙들고 있었으니. 그러나 하느님께선 그런 방법으로 조금씩 나를 믿음으로 인도 하셨다.
심장병이란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당장 죽어버릴 것만 같던 아이는 그래도 힘들었지만 밤낮을 구분하는 생활을 하며 끓을 수 없는 정을 내 가슴에 더욱 깊이 심어주고 있었다.
한편, 의과대학에 의뢰한 검사는 1주일 후에 결과가 나온다더니, 남편은 1주일이 아니라 10일, 보름이 지나도록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으로 나에게 또 하나의 엄청남을 숨기고 있었다.
20여일이 지난 후, 난 산후조리를 끝내고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왔고, 아이가 태어난지 1달 즈음해서 BCG 접종을 위해 병원에 들렀다. 그런데 그때 나에게 커다랗게 크로즈업 되어 오던 뇌성마비아의 모습이 있었다. 예전같았으면 그냥 외면해 버렸을 그 아이를 보며 난 또 다시 자신을 참회했다. 사지가 뒤틀려 보행도 자유롭지 못한 그 아이가 일그러진 얼굴로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던 그 모습을 보면서, 난 그래도 내 아이가 저 아이보다야 백배 천배 낫지 않은가 하며 나를 달랬다. 그날 저녁에 나 병원 앞에서 보이는 그래도 수술만 하면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를 말 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나의 손을 꼭 쥐고서 물기어린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숙아! 우리에게 뇌성마비아든 심장병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니?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 들이면 되는 것이야』
『왜 상관이 없어요? 우리 아이는 수술만 하면 정상적인 삶을 할 수 있으니, 뇌성마비아와는 천지 차이죠』
영문도 모른채 뾰루통 해 하는 나를 남편은 젖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때 불쑥 떠오른 생각으로
『참, 의뢰한 검사는 왜 아직 나오지 않을까요?』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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