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첫 인상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냉정하고 차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교만하고 뻣뻣하다고 합니다. 또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옛날에 한번은 어떤 수녀님을 만나러 간적이 있는데 마침 내가 만나려던 수녀님은 안계시고 함께 사는 아주 젊은 수녀님이 나를 맞이 했습니다. 그 수녀님이 나더러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을때, 나는 그 대답을 하지 않고 내가 찾는 수녀님이 언제 돌아 오시는지 물었습니다. 그 수녀님은「아마 늦게 오실거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 표정이 이상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나중에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고 본당 신부님께 가 있었습니다.
잠깐후 외출했던 수녀님이 돌아왔는데, 그때는 잊고 있다가 저녁 식사 때 갑자기 생각나서 그 젊은 수녀님이 말하기를『아! 참, 오후에 웬 시꺼먼 사람이 검은색 점퍼를 입고 수녀님을 만나러 왔는데 안계신다고 했더니 나중에 또 온다고 했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수녀님, 조심하십시요! 꼭 사기꾼같이 생겼습니다』했습니다. 그 수녀님은 어떻게 생겼더냐, 안경을 꼈더냐? 등등 물어봤더니, 아무래도 내가 다녀 간듯해서 그렇다면 본당 신부님께 연락하면 알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사제관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나도 본당신부님과 얘기가 길어져서 저녁 식사까지 같이 하다가 수녀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식사 후 수녀원에 가서 얼마나 유쾌하게 웃었던지! 그 때 당황해하던 그 수녀님도 이제는 원로(?)수녀님이 되셨으며, 나는 지금도 그 분의 수도 본명과 호적 이름까지 잘 기억하고 자주 생각합니다. 그후 나는 적어도 나쁜 인상만은 주지는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됐습니다. 요즘은 그나마 포기하고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첫 인상을 좋게 심어주는 것은 큰 은총인듯 합니다. 나는 나의 이 부정적인 인상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하면 기도를 잘 하는지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이때 나는 대단히 당혹한 느낌을 갖습니다. 사실 나도 기도 잘 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런데 수도회 신부로서 나도 기도 할줄 모른다고 하기가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줄 수도 없고, 모른다고 말해도 믿으려하지도 않아서 답답했던적이 많습니다. 분명히 밝히지만 나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사람들은 기도의 효험 얘기를 잘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내 기도는 도대체 효험이 없었습니다. 대학예비고사 미사봉헌에서 합격률이 1~2할 정도입니다. 남들은 효험 있는 기도도 잘 하는 모양인데 나는 왜 기도 하는 것마다 거꾸로 실현 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역시 기도 할줄 몰라서 그러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심정도 기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개인 교수나 며칠 강습이라도 받아보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성서에서는 예수님이「다볼산」에서 기도하실때에「그분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모습이 기도 함으로써 달라진다는 것을!
그러고보니 내가 다른사람의 눈에 비치는 인상도 부정적인 이유는 곧 내가 기도 할줄도 모르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인위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주려고 얼굴 표정을 만들어 봤자 잠시 뿐이며 대화나 관계는 오히려 어색하기 이를 데 없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한번은 성공적으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항상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한다면 역시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라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기도 하려고만 하면 무슨 일이 생기고 또는 바삐해야 할 일이 생각나도, 그래서 그 일 때문에 분심 중에 기도하는 것 보다 할 일을 다 해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기도하려 하다보면 시간이 없어 못 하게 됩니다. 또 모처럼 시간을 내서 십자가 앞에 앉으면 영락 없이 분심이 생깁니다. 평소에 전연 생각치도 않던 사람이나 과거의 사건들이 머리에 떠올라 그 생각에 흠뻑 빠져 있다보면 기도 시간인지 자유로운 공상 시간인지 구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미사 도중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입으로는 미사 경문을 외우지만 머리에는 오만가지 생각으로 꽉 차있습니다. 어떤 때는「기도를 잘해야지, 분심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때문에 미사 경문을 틀리게 읽기도 합니다.
바로 지난 주일날엔 강론후 잠깐 묵상 중에 「신자들의 기도를 어떻게 시작 할까」하다가 해설자가 모두 일어나라고 하기에, 얼떨결에 신자들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분위기가 이상해서 수녀님을 보니까 무어라고 말하는 입모양이「사도신경」했습니다. 그때서야 내가 사도신경을 빼먹은 줄 알았습니다. 「잠깐 묵상합시다!」했으면 나도 함께 묵상 할 일이지 딴 생각은 왜 합니까.
기도 뿐 아니라 매사에 한가지를 하면서 다른 것을 생각하면 결국 그나마 소홀해지고 실수하고 따라서 마음의 안정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상태에서는 상대방에게 편안한 마음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예를들어「이 사람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가!」생각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으면, 상대방은 나 한테서「내가 이런말을 하고는 있지만 실수하는게 아니지 모르겠다. 어쩐지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얘기를 계속할 것입니다. 만일 자기에게 뭔가 감추든지 속이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되면, 때로는「사기꾼」, 「위선자」또는「이중인격자」같은 부정적 인상을심어주게 됩니다.
내가 수녀원에 갔을때, 나는 수녀님을 찾아 온 용무를 감추었고 그 결과 나는 사기꾼이 되었으며, 따라서 그 수녀님은 내가 만나려는 수녀님이 돌아오실 시간을 숨겼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도 그 분 앞에 뭔가를 감추거나 어떤 변명을 하려고 한다면 기도가 잘 안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가 기도이기에 이러한 대화를 새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처럼 기도 함으로써 뻣뻣하고 냉정한 인상으로부터 부드럽고 다정한 인상을 주는 자로 모습이 변화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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