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가뭄끝에 단비가 내렸다. 길섶이나 수풀이나 아파트 벽에 쌓였던 먼지를 씻어내고, 촉촉히 젖은 땅에서는 이제 마른잎들을 헤치고 새싹이 돋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니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결도 한결 부드럽다.
봄이다. 3월이다. 얼마전 경칩이 지났다. 경칩은 벌레와 짐승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절기이다. 이런 3월에 학교에서는 새 학년이 시작된다. 나는 그것이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벌레와 짐승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우리도 긴 겨울방학과 봄방학의 휴식으로 부터 깨어나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3월을 영어로는「마치(March)」라고 한다. 이것은「행진」이란 말의 마치(march)와 그 철자가 같다. 3월은 어둡고 긴 겨울에서 깨어난 만물들-산짐승과들의 벌레들, 새와 풀꽃들까지 모두 나서서 나팔을 불며 삶의 행진을 시작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두운 방안에서 게으름이나 피우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우리도 마음을 새로이 가다듬고 이 행진에 동참하자.
사람은 게으름을 피우면 한없이 게을러 진다. 부지런하고 게으르다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다. 늦잠자는 습관이 붙은 사람은 좀처럼 일찍 일어나지를 못한다. 공부하지 않는 습관이 붙어 버리면 공부가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늘 공부하는 습관이 붙은 사람은 공부가 재미있고,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간을 습관의 노예라고 했다. 좋지 못한 습관의 노예가 되어 헤매다가 아까운 인생을 허무하게 끝내고 마는 사람들이 이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버나드 쇼 같은 유명한 작가의 묘비에도「우물쭈물 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고 씌어 있다고 하는데.
자, 이제 이불을 개고, 텔레비전을 끄고, 소파에서 일어서자. 그리고는 먼저 책상 정리부터 하자. 쓰지 않는 책이나 공책, 학용품들은 자리를 옮기거나 깊숙히 넣고, 새 학년에 쓸 새 책과 공책을 책꽂이에 정리해 두자. 새 학년에는 용기를 가지고 게으름의 습관을 과감히 물리치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결심부터 하자. 그러나 결심만으로는 부족하다. 게으른 습관이 또 고개를 쳐들어 작심삼일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실천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성공이란 결국 실천한 사람의 가슴에 달아주는 훈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세속적 욕심을 채우는 것을 성공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인물들을 생각해 보아도 진리를 위해, 정의를 위해, 사랑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 있지만, 재산과 명예와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했던 사람들은 시간의 먼지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야훼 하느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는 천주교 신자들은 하느님과 조화로운 인간이 되는 것, 하느님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을 보람있는 삶으로 생각해야 한다.
만물이 나팔을 불면서 일어서는 3월의 행진대열에 나서면서, 우리가 향하는 곳에는 늘 하느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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