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신 주님」「자비하신 주님」이라 남들은 말하지만 내게 있어 하느님은 무척이나 불공평하고 잔인하기만하신 주님이셨다. 왜나햐먼 19세의 어린 내게 몸의 반쪽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이다. 다리는 다리대로 힘이 없어서 질질 끌리고 팔은 팔대로 제 기능을 못하고 뒤틀려있는 것이 내 모습이다.
이런 나를 보고 이웃사람들은『그렇게라도 목숨을 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 가라』고 격려의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결코 내몸의 반쪽을 잃어버리고도 목숨을 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가 없었다. 왜 하필이면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한데 나만이 이런 꼴로 살아가야 한다 말인가. 나도 남들처럼 가고 싶은 곳에 다가보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며 살고 싶었다.
나는 모든 것이 귀찮고 불평과 불만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작년 겨울 어느 아침이있다. 눈을 뜨니 흰눈이 쌓여있었다. 흰눈이 온 것만을 기뻐하며 마당으로 내려서던 나는 그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었다. 어찌나 아픈지 징징 울면서 엉금어금 기어서 방으로 들어와서는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다. 엉덩이가 아파 똑바로 누워있기도 힘겨울뿐만이 아니라 어쩌다 옆으로 돌아누우려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돌아누울수 조차 도 없었다.
그렇게 아픔과 괴로움속에서 사흘을 지내고 있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아! 그렇게라도 활동하며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끝없는 욕심과 교만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에 일침의 가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는 저절로 두손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바치게 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그 아픔의 고통은 사라졌지만 그때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은 내게 소중한 진리를 심어주었다.
『네가 나에게 더 가까이 오도록 하는데 고통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나느 너를 위하여 기꺼이 그것을 행하겠다』는 말씀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워주시기 위하여 고통과 시련을 주시며 고통을 통해서 우리를 더욱더 성숙시켜 주신다는 소중한 진리를 깨달았다.
이제 더이상 나의 아집에 빠지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인내와 절제가 더욱 요구되는 이 사순절을 보내면서 시련을 감사하게 받아 들이는 마음가짐을 키워나가겠다. 주님의 사랑앞에 더욱더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내 모은것을 주님께 내맡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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