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말이 많았구나, 거룩한 하루 일과를 자칫 많은 말로 흐려놓은 날 쓸데없는 말의 무게도 잠자리가 편치 못한다. 처음 입회땐 할말이 없어 먹는 것이 아니라면 입이 필요없었는데. 종치면 시간표대로 하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얼마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할말이 너무 많아 가만 있지 못하는 나를 자주 본다.
그렇게 TV, 라디오, 신문, 잡지, 주보 등이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도자인 나까지 말이 많으니 세상이 얼마나 더 시끄러울까.
너나 할것이 없이 말이 많은데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결국 내가 들어야 할 말을 내가 하는 것은 아닐까? 말이 많은 나일수록 꼭 해야할 말을 못하고는 변명하듯 딴 말이 많았음을 보게된다. 정말 해야할 말들을 하지 못해서하는 빈말들. 그래서 요즈음 교회내 간행물은 물론 일반 신문, 잡지에도 계속 많은 홍보를 하고 있는 「생명운동」에 대해서 나도 뭔가해야지 하며 이것 저것 할수있는 것들을 찾다가 나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내가 하는 말이 이웃을 살리는 말인지 죽이는 말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나무와 꽃은 사랑한다고 아침 저녁물주고 이곳 저곳 옮기고 가꾸면서, 키우는 개에게도 춥다고 덥다고 신경쓰면서 바로 옆의 자매에겐 친절한 말한마디 건넬줄 모르는 무정한 나를 본다. 할말이 많다고 하는 나의 말이란 비방과 불평과 이웃을 단죄하는 말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많은 말안에 어쩌면 이웃을 생각하는 말에는 그리도 인색했을까? 한마디「미안하구나」라는 말이 없어 더욱 마음의 상처가 깊어가는것을 보면서도 그런 말은 철저히 아끼는 나의 옹졸함 독소와 같은 나의 말에 얼마나 많은 나의 이수들이 죽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
무심히 한나의 말 한마디가 그에게 상처로 남아 병들게 했다면 나의 그한마디 죄는 그의 일생의 아픔을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 내가 한 말들이 빈말이었음이 드러났을 때 그가 받을 아픔에 대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당에 가본다. 성체앞에 앉아 내옆의 자매들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이웃을 살게하는 말들을 조용히 되뇌어 본다.「나 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느 너를 믿는단다. 나느 너의 좋은데를 안단다. 내가 잘못했구나」어떤 지우개로도 지울수 없는 이런 생명의 말을해준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고통이 문제가 아닌것 같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살아함을 깨닫는다면. 『예수님 그동안 또 말이 많았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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