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각자 한 50명 남짓 대자녀들을 두고 있다. 누구나가 그렇듯이『내가 당신 대부(대모)가 되겠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의례히 대자나 대녀될 사람이 누구를 마음에 점찍어 두던지, 입교(入敎)를 시킨 사람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누가 대부나 대모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면 가급적 거절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봉사이며, 하늘아빠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만일 모두가 다 귀찮고 관리하기가 힘들다고 거절한다면 누군가가 해야할 그 일은 어리석은 자의 몫이란 말인가? 때로는 나이가 나보다 위인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별의 별 직업을 가진 대자들이 다 있다. 사회적으로 꽤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의사, 보일러 수리공, 회사직원, 노동자, 건축업자, 예비군 중대장, 식당 주인 등등 형형색색이다.
쾌히 승락은 하지만 꼭 두가지 조건을 내세워 약속해 주기를 부탁한다. 그 한가지는 나의 호칭을 『대부님』이라 부를것. 또 한가지는 적어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이 세상 어디에 가있든지 소식을 달라는 것이다. 때로는 이 약속을 하지 않으면 거절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의례히 그러면 『당연한것을 약속할 것도 없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개중엔 두번째 약속이 잘 지켜지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약속을 철저히 잘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제 그런 약속을 한적이 있나 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부터 아예 부담스럽다고 다른사람으로 대부 될 사람을 바꾼 예도 없지 않다.
오래전에, 대부 대자 관계 유재리풍(由來之風)에 대하여 신부님과 수녀님께 알아본 적이 있으나, 시원한 해답을 얻질 못했다. 큰 문제도 아닐 성 싶고, 이제 더 알아볼 용기도 잃어, 나름대로 혼자 생각해본다. 어차피 인생은 인연(因緣)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모두가 창조주의 피조물인 우리는 남녀가 만나의 인연으로 내가 태어나고 부모자식, 형제지간으로 맺어져 각자 인생행로의 동반자(同伴者)가 될뿐, 그 이상 무슨 싶은 뜻이 있겠는가. 물론, 우리의 육적 인연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가직적 관계에만 연연불망(戀戀不忘)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점인가.
우리를 당신 모상대로 손수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입과 입으로 직접 불어넣어, 만유중에 으뜸으로 창조하여 주신 하늘 아버지 앞에서, 약속과 맺음의 은총으로 새로 탄생하는 영세자의 대부대자 관계보다 더 뜻있는 인연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러나 대자가 나를『대부님』이라고 부르면서, 나의 아내에게 『자매님』 『아주머니』라고 부른다면, 모처럼 맺은 인연을 아름답게 이끈다고 볼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의 대자는 아내에게도『대모님』이라 부르고, 아내의 대녀는 나에게도『대부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기들끼리는『형님, 아우』 『언니, 동생』이렇게 부른다.
어느날, 대녀 남편의 영세 대부를 서게 되었다. 온 가족이 다 신자인데 혼자만 영세를 받지 않고 있다가 늦게 영세를 하게된것이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재학중인 그집 아들 삼형제는 우리 부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럼, 앞으로 우리는 두 분을 어떻게 불러야 될지요?』나는 설명까지 덧붙이면서 서습없이 대답했다. 『대부 할아버지』라고 대답했다. 『대부 할아버지』라고 불러야지! 세속촌수(世俗忖數)를 따지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으리라. 교회법이나 관례(慣例)상 어떤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아름다운 인연이 아닐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도 빙그레 흐뭇해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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