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한국 가톨릭 교회는 자치교회로 인정받아 정식 교계제도가 설정된지 30돌을 맞았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교회가 그 나이테에 걸맞게「자립교회」로 자랐는가를 헤아려 볼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교계제도가 정식으로 성정된 1962년은 교회 쇄신과 발전을 위한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열려, 이방지역의 전통문화를 존중할 것과 전례용어를 그 나라말로 하도록 허용한 해였고, 한국은 경제자립을 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착수된 해였기도 하다. 우리 교회도「밀가루 신자」들을 거느린 도움받는 교회에, 스스로를 세워 가는「자립교회」로의 길을 걸어왔다. 1인당 5천불의 소득을 누리는 한국의 경제발전에 맞춰, 한국가톨릭도 물질적으론 자립을 이룩했다고 볼수 있으나, 영성적으로도 자립했는가의 물음엔 자신이 없다. 아직도 몸뚱아리는 젊은이의 모습인데, 그 얼은 유럽이나 바티깐의 「작은 판박이」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된 흘로서기의 모습이 아니다.
1968년 순교복자 24위의 시복식 때, 교황 바오로 6세가『한국 교회의 개척자들이 신앙의 진리를 외국 문화에서 들여온 형식으로가 아니라, 미리 연구하고 노력해서 자기에게 알맞게 이해된 메시지로 받아들임으로써, 온전히 진실하고 정통적인 그리스도교임과 아울러 완전히 한국적인 그리스도교를 이룩한 것이다』라고 한 말에서,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이땅에 세우고자 했던 한국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가 있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밖으로부터의 선교사가 들어와 전교함이 없이 자발적으로 평신도 스스로 교회를 세워, 세계 전교사에 그 유래가 없는「자생교회」라는 긍지를 우리들에게 남겨 주었다. 또한, 당시의 이질적인 그리스도교적 사상을 과감히 받아들여 배달겨레의 전통과 정서와 종교심에 알맞는 표현양식에 따라 교리를 풀이하는 독창적인 사상체계를 세우면서, 이 믿을 교리를 군주적 사회체제를 뜯어고치려는 실천적 이념으로 활성화 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평신도 중심의 교회에서 외국성직자 중심의 교회로 바뀌면서, 조선 때 배달겨레가 「배불숭유」의 길을 걸으면서 「작은 중국」이 되길 갈망하고 제것은 무조건 깔보고 중국 것은 무조건 좋게 여기는 못된 습성에 젖게 되었듯이, 우리 교회도 유럽 교회나 바티깐의「작은 판박이」가 되고자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물론 우리의 주체성이 모자란 탓도 있었겠지만, 서양 선교사들의 전통적인 한국문화와 종교 사상들에 대한무시나 무지로 말미암아 서구교회의 이식이나 부식에 치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 성직자가 중심이 되어 지난 삼십해를 걸어오면서는 그타성에서 완전히 벗어났는가? 6%를 뺀 나머지 배달겨레가 아직도 한국 가톨릭을 외래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면 한국 가톨릭은 한겨레의 복음화에 앞서 실로 뼈아픈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배달겨레의 전통문화라는 바위 위에 세워졌을 때 들어온 종교라는 개념에서 배달겨레의 종교로 바뀌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 가톨릭 교회는 한겨레의 복음화라는 무거운 사명을 지고 가톨릭 문화의 토착화를 위해 더욱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복음의 본질 규명, 복음이 뿌리내릴 한국적 바탕을, 복음이 뿌리내릴 한국적 바탕을 파악하기위한 한국의 전통문화의 구성 요소에 대한 재검토, 한국 교회사(선교역사)의 재검토, 한국적 신학의 수립을 위한 복음 신앙의 한국적 표현들이 나타나야 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들 나눠진 키레네 사람 시몬 (루가23, 26)처럼 사제들과 십자가를 나눠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평신도사도직 운동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겠다. 그리하여서구 교회의 모방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신학사상, 전례양식, 신심운동, 영성생활, 건축양식들을 이룩할때 한국 가톨릭은 주체적인 교회로서 배달려레의 앞날에 새로운 힘과 가능성을 제공하게 될것이다.
한편, 얼마전 해외토픽에 영국의 캔터베리 대주교인 조지 캐리가 오는 21세기의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는 한국, 인도네시아, 남미들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말이 실렸던 적이 있다. 이와 비슷한 말들은 지난 84년 1백3위 시성식을 기점으로 한국 가톨릭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쏟아져나왔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한국 가톨릭을 가리켜「젊은 교회(키에사 지오바니)」라고 하면서, 아시아의 중심 교회 구실을 당부한 적이 있다. 21세기 범태평양 문화권의 중심국가가 되는 한국의 교회로서, 또한 서른 해의 나이테를 가진「젊은 교회」로서의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의 기대와 새세기의 시대적 부름앞에서 홀로서기도 제대로 안된 판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나서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겸허히 낮추고 능력이 모자람을 진실로 시인할 때 역사를 섭리하시는 주께서는 우리의 모자람을 채워 주시라고 믿는다. 물론 3백만의 숫자에 안주하려는 이들에겐 잠꼬대 같은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의 빚을 진 이들이고 따라서 복음전파를 통하여 그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하느님의 섭리와 역사를 거스른 스타일의 2천여 해의 떠돌이살이를 거울삼아, 하느님의 화가 미치지 않도록(I고9,16 우리 교회는 잠을 깨고 일어나, 자유세계의 물질만능주의와 공산세계의 어두움을 향해 빛을 밝히기 위해, 먼저 배달겨레의 전통 문화에 복음을 확고히 뿌려내리기 위한 가톨릭 문화의 토착화에 온 힘을 다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이 일을 다잡아 할 교구청 안에 「문화국」의 신설을 요청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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